탄핵심판은 끝나도…‘이념 내전’은 계속된다
[주간경향]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을 파면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나온 지 8년 만에 헌법재판소가 또다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결정되면 12·3 비상계엄의 위헌 논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지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일단락된다. 지난 연말부터 전 국민이 빠져서 허우적댄 탄핵의 늪에선 일단 나오겠지만, 지난 석 달여간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초유의 상황을 돌이켜볼 때 이는 끝이 아닌 또 다른 분열의 시작이 될 개연성이 높다.
헌재의 결정은 윤 대통령이 ‘애국시민’이라 부르는 지지층으로선 더 끈끈하게 결집할 자양분이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판단이 곧 나올 예정이고, ‘자유의 몸’이 된 윤 대통령은 언제라도 지지층을 겨냥한 외부활동을 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친이재명 세력 역시 이에 질세라 ‘반윤’ 전선을 더 뚜렷하게 긋고 있다. 정치인들이 사회 통합을 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극단의 정치를 하면서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가 실종된 정치권도 문제지만, 그간 윤 대통령 측이 ‘방어권’이라는 이름하에 짓밟아온 사법질서에 남겨진 상흔도 깊다. 이례적인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는 법이 일반 시민과 권력자 앞에서 얼마나 차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정치가 작동하지 않고 사법질서마저 흔들린 채 두 동강 난 사회에선 대화나 타협을 기대하기 힘들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에 불복해 가짜뉴스를 살포하고, 상대편을 향한 실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사태와 같은 대규모 폭동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실패한 친위 쿠데타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은 계엄의 외피를 쓴 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self-coup), 헌정 중단 시도에 대한 판단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 언론은 ‘비상계엄’이란 중립적 단어로 이 사건을 그간 조명했지만, AP통신을 비롯한 외신은 계엄 초기부터 이 사안을 실패한 ‘친위 쿠데타’라고 명명했다. 외신 더컨버세이션에 따르면 친위 쿠데타는 1945년 이래 전 세계에서 총 46건 발생했다. 한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를 넘지 않은 나라에서 벌어졌다. GDP가 3만5000달러가 넘는 한국에서 벌어진 이번 쿠데타는 해외에서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기괴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기이한 헌정 파괴 사건에 대한 헌재 판단이 나오기까지 한국사회는 적지 않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친위 쿠데타를 옹호하는 극우 지지층이 세력화했다는 점이다. 계엄 발동 직후만 해도 시민들의 분노와 비판 여론은 일치된 것만 같았다. 폭설에도 은박 담요를 덮고 여의도를 지킨 ‘키세스 시위대’, 농민들의 트랙터 상경 시위인 일명 ‘남태령 대첩’의 탄핵 촉구 열기가 그랬다. 하지만 이도 잠시였다.
계엄이 발생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돼 서울 광화문에는 탄핵 반대 지지자들이 경광봉과 성조기를 들고 모여들었다. 2월 20~21일 즈음에는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이 45.1%로 찬성(52.0%) 여론에 근접하게 따라붙기도 했다(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 대상, 에너지경제신문 의뢰 리얼미터,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민주당을 향해 ‘니는 잘했나?’라고 쏘아붙인 ‘가황’의 한마디도 이 무렵 나왔다. 민주주의를 짓밟은 반헌법적 행태를 제도적으로 보장된 야당의 대여 비판·견제 활동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며 정당화하는 윤 대통령 측의 논리가 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의힘 극우 선동가 결탁
사회를 이처럼 갈라놓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윤 대통령의 선동 정치다. 그의 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하게 작동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계엄이었다고 쿠데타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보수진영은 점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극우 선동가들이 정치 무대의 전면에 등장했고, 여당은 이들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이들과 결탁했다. 지난 1월 19일 벌어진 서부지법 난입·폭동 사태는 온라인에 갇혀 있던 극우세력이 현실 세계로 튀어나와 실체적 폭력을 행사하며 법치주의를 부정한 것이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이 사건을 “법치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심각한 위기 징조”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민의힘 반응은 무덤덤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폭동 사태 당일 “지지자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폭력적 수단으로 항의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적 입장을 내놓았는데, 원내대표가 이 입장을 곧 뒤집었다. 같은 날 권성동 원내대표는 “폭력의 책임을 시위대에 일방적으로 물을 수 없다”며 시위대를 진압한 경찰에 책임을 추궁했다. 그 뒤로도 국민의힘과 극우 강경파들은 한패로 움직였다. 같은 당 서천호 의원은 지난 3월 1일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집회에 참석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는 불법과 파행을 자행해왔다. 모두 때려 부숴야 한다. 쳐부수자”라고 선동했다. 선관위·법원·헌재에 대한 부정은 70여 년간 이어져 온 민주주의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지 세력을 겨냥한 윤 대통령의 선동은 탄핵 심판 최후진술에서도 일관됐다. 최후진술에서만큼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냐는 일말의 기대는 맥없이 꺾였다. 그의 말이다.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앞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합니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은 앞으로도 극우세력과 결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승찬 정치컨설턴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있던 2017년과 다른 건 보수의 극우화 경향이 양적으로 강해졌고, 질적으로 공고해졌다는 것”이라며 “정치의 내전 상황은 지속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법의 오염
계엄과 탄핵 국면을 거치며 남겨진 또 하나의 후유증은 오염된 사법질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과거에 언급한 대로 헌법은 “법과 정치가 교차하는 영역에 존재”한다. 헌법학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에 따르면 기본법인 헌법에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에 개방성이 높은 것도 헌법만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번 탄핵 국면에선 정치적 계산에 따른 법 해석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 측은 헌법 내에서 계엄령을 했다고 강변했고, 극우층은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를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저항권’이라고 불렀다.
윤 대통령이 방어권을 빌미로 보여준 각종 법 기술은 시민들의 피로감을 극도로 높였다. 정계선 헌법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 회피촉구 신청서, 권한쟁의심판·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체포영장 집행 불허 이의신청 등등 교묘하게 법을 비틀어 건건이 트집을 잡았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정치에 관한 훌륭한 정의 중 하나는 ‘어젠다를 비어젠다로 바꾸는 기술’”(경향신문 2021년 12월 5일자)이라고 한 바 있다. 이슈가 될 것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은 정치란 이야기다. 탄핵심판이 벌어지는 동안 윤 대통령의 정치는 정반대로 작동했다.
윤 대통령의 쿠데타도,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도 종국적으로는 법의 심판을 받게 돼 있다. 문제는 사법 체계가 특정인에게 편파적으로 작동한 채로 종결됐을 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의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 검찰의 항고 포기 수순은 법이 ‘힘 있는’ 사람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법원은 구속 기간 산정 방식이 잘못됐다는 점을 들어 구속 취소를 결정했다. 검찰이 수십 년 동안 ‘일’ 단위로 처리해온 실무를 돌연 ‘시간’으로 판단했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윤 대통령 앞에서 갑자기 ‘피고인의 이익’을 각별하게 살핀 법원의 이 결정에 대해 검찰도 군말 없이 따랐다. 상급법원 판단도 원치 않는다며 항고를 포기했다. 앞서 헌재가 피고인을 일시적으로 풀어주는 구속 집행 정지 때의 즉시항고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을 들어 구속 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도 위헌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검찰의 항고 포기 이유였다.
하지만 검찰은 이미 일반인 사건에서는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여러 차례 즉시항고 한 바 있다. 결국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는 관행과 형평성, 법을 모두 무시한 오로지 ‘윤 대통령’만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증거인멸 우려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자유의 몸으로 남은 재판을 받게 된다. 차성안 서울시립대 교수는 “일반인 사건에선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검찰이 즉시항고한 사례가 많았고, 대법원이 이를 문제 삼지 않고 받아들여 판단한 다수 결정까지 확인됐는데 윤 대통령에게만 (즉시항고를) 안 한 것은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지 못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선택 고려대 명예교수는 “판사는 형사소송법 명문 규정에 없는 법 해석으로 명백한 오판을 했고, 검찰은 즉시항고를 안 함으로써 70년 관행을 무시했다”며 “검찰은 윤 대통령은 풀어주고 일선 검찰청에는 기존 방식(일 단위)대로 계산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런 행태는 국민 분노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헌재와 법원, 검찰 등 수사기관에 윤 대통령과 관련 피고인들의 인권 보호를 주문하는 안건을 의결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법의 사유화를 넘어 정부기관의 사유화가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비상계엄 지지한 인구집단, 끝까지 간다”
탄핵심판 선고 이후 두 달 내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할 여권이 중도층과 친윤·극우 지지층 가운데 어느 쪽 표심 잡기에 집중할지 미지수다. 여야가 중도층 겨냥에 집중한다면 양극화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지만 이 역시 확실치 않다. 이미 여권에선 중도층을 겨냥한 ‘승복 선언’과 ‘아스팔트 우파’를 겨냥한 선동 정치의 투트랙 전략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3월 16일 “우리 당의 공식 입장은 헌재 판단에 승복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도부의 승복 선언과 달리 소속 의원의 절반을 넘는 62명의 의원이 헌재 앞에서 탄핵 기각·각하를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헌재가 2월 27일 권한쟁의 심판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음에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을 거부하고 국민의힘이 이를 지지하는 것도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으로 볼 수 있다.
탄핵심판 선고를 받은 윤 대통령이 앞으로 외부활동에 나설지 여부와 3월 26일 예정된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의 항소심 선고 결과도 주요 변수다. 유 대표는 “항소심 판단에서 무죄가 나온다면 이 대표가 대선주자로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압승할 가능성이 크지만, 만약 유죄가 나와 피선거권이 박탈될 경우 또다시 헌정사상 초유의 일로 현직 대통령이 대법원 판단을 받아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진영 싸움이 격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쿠데타를 지지해온 보수층의 40%가량이 잠재적 폭탄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는 “비상계엄을 지지한 이들은 보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 해석이 어려운 인구집단”이라며 “이들은 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갈등 국면이 도래하면 또다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친윤 지지층이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결집할 것이란 분위기는 이미 탄핵반대 시위 현장에서 목격됐다. 3월 첫 주 주간경향이 탄핵반대 시위에서 만난 윤 대통령 지지층 중에는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 시 승복할 수 없다는 사람이 많았다. 대구에서 올라온 한 남성(70)은 “선거부정은 의혹이 아니라 팩트”라며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도) 내 마음은 차단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22세라고 밝힌 한 남성도 “인용이 될 경우 대다수의 사람이 분노해서 거리로 뛰쳐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남성(24)은 “(인용 여부와 관계없이) 애국 시위 활동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야권이 정치력을 발휘해 혼란을 수습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원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음에도 국회 내에서 갈등을 조정하지 못한 채 법적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장외 여론전에 몰두하는 행태는 윤석열 정권에 비판적인 중도층조차 등을 돌리게 했다. 윤 대통령 등을 향해 내놓는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돼야 한다”(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거나 “교도소에서 평생 썩는 그런 우를 범한 존재”(부승찬 민주당 의원) 등의 독한 말들이 기존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동시에 반대편의 적개심을 키우고 중도층의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역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하상응 서강대 교수는 “서로 죽기 직전까지 싸우는 양극화가 한국사회에서 더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 교수는 “유권자가 본인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고 색깔론에 의지하면서 여야 모두 서로 때려잡겠다는 말을 쏟아낼 뿐 의미 있는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정치인도, 유권자도 이 싸움을 멈추려 하지 않는 공범”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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