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크라 원전으로 '광물협정 2단계' 노리나…의문 증폭
이질적 기술에 주변 인프라도 훼손…러시아 양보 여부도 불확실
'경제 밀착으로 안보보장' 전략 해석…광물 채굴 에너지로도 활용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추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면서 그 배경을 두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미국 CNN, 영국 텔레그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미국의 자포리자 원전 소유·운영' 구상을 구체화하기에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걸림돌이 많다.
우선 이 원전을 미국이 소유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부터 모호하다.
우크라이나의 한 전직 고위 공직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원전을 무슨 근거로 소유할 수 있느냐"며 "설령 미국이 자포리자 원전을 넘겨받는다 치더라도 이를 사들이는 것인지 양도받는 것인지 의문점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를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느냐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아무리 미국의 원자력 기술 수준이 높다고 해도 자포리자 원전은 이질적인 '소비에트 시대 기술'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군축 및 비확산센터 엘레나 소코바 소장은 "미국이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타국이 낯선 설계로 만든 것을 경험도 없이 즉각 운영할 수 있겠느냐"며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보성향 과학단체 '우려하는 과학자들'(UCS)의 에드윈 라이먼 원자력 안전 부문 이사는 자포리자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를 가정하며 "소유와 운영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장악당한 이후 사실상 전력 생산을 멈춘 상태라 재가동하려면 재정비가 필요하다.
최전선과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관계로 자포리자 원전도 드론 공격과 포격 등에 피해를 입었다.
원전으로 들어가는 4개 전력선 중 3개는 매우 심하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고 원전 냉각에 쓰이는 물을 공급하던 인근 저수지는 러시아의 댐 공격으로 말라붙었다.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전문가 올렉산드르 하르셴코는 6개 원자로 중 1개만 재가동하는 데에도 최대 1년이 소요되고, 모두 가동하기까지는 4년까지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냉각수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재가동할 수 있는 원자로는 많아야 2개 정도에 그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현재 자포리자 원전과 주변 지역을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원전 가동에 필요한 복합적인 인프라를 고려하면 미국은 자포리자 원전의 소유·운영권만 가져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근의 화력발전소나 도로, 거주지 등도 넘겨받아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현재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돌려줄 의향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포리자와 인근 지역의 '양보'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자포리자 원전의 안전도 보장하기 어려운 상태로 남겨지게 된다.
라이먼 이사는 "원전과 주요 지원시설에 대한 공격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이 철통같이 지켜져야 하지만, 지금도 인근에서 매일 포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난점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자포리자 원전에 눈독을 들이는 까닭을 이해하려면 우크라이나와 추진하는 '광물 협정'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군의 개입 없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심화하는 것만으로 안보 보장 효과까지 낼 수 있다는 관점이 자포리자 원전 소유론과 광물 협정에 공통으로 깔려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광물 협정이 실현돼 실제 채굴에 나서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전쟁 직전 우크라이나 전력의 20%를 생산해 온 자포리자 원전이 이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광물 협정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자포리자 원전에 대해서도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합작 투자'를 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내다봤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미국과 자포리자 원전의 소유권을 논의하지 않았다면서도 "미국의 참여와 투자로 발전소를 현대화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합작 투자가 우크라이나의 안보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비판도 나온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을 지낸 브렛 브루엔은 "푸틴 대통령은 비대칭 작전과 조작의 달인"이라며 "광물과 발전소를 보유한다고 민간인들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sncwook@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경북산불 현장 투입됐다 귀가하던 60대 산불감시원 숨진 채 발견 | 연합뉴스
- '한국인 실종 추정' 美 교통사고 추가 유해 수습…"신원확인 중" | 연합뉴스
- 산불 연기 보이는데도 논·밭두렁서는 여전히 불법 소각 | 연합뉴스
- 신고 내용 알 수 없는 112 문자…출동했더니 물에 빠진 30대 | 연합뉴스
- 벤투 UAE 감독 경질에 정몽규 회장 "놀랍다…밝은 미래 응원" | 연합뉴스
- 헤어진 여성 근무지 찾아가 살해한 40대, 2심도 무기징역 | 연합뉴스
- 북, '하늘의 지휘소' 운영하나…韓 '피스아이' 닮은 통제기 공개(종합) | 연합뉴스
- 1분30초 빨리 수능 종쳤다…법원 "1명 최대 300만원 국가배상"(종합) | 연합뉴스
- 아빠한테 맞은 11살 아들 사망…엄마는 학대치사 방조 무혐의 | 연합뉴스
- 리투아니아서 미군 4명 훈련 중 실종…장갑차는 발견(종합2보)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