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탄핵까지 꺼낸 野…속내엔 ‘이재명의 초조함’
헌재 선고 지연에 野 불안…李 2심보다 늦어질까 ‘전전긍긍’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회의를 마치기 전에, 이 앞에서 최상목 대행이 근무하는 모양이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19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바로 앞 광화문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 말미에 계획에 없었던 듯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모두발언에서 헌법재판소를 향해 신속한 선고를 촉구한 이 대표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 작심한 듯 추가로 비판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헌재에서 최상목 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게 위헌이라고 판단을 내렸음에도 3주 가까이 임명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헌법상의 직무유기'라면서 "(최 대행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직무유기죄 현행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경찰이든 국민이든 누구나 즉시 체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부터 국민 누구나 (최 대행을) 직무유기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으니 몸조심하기 바란다"고 수위 높은 경고의 말까지 남겼다.
李 "몸조심" 발언에 與 "테러 선동하나" 반발
정치인에게 메시지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대권을 꿈꾸는 대선주자에게는 특히 그렇다. 대선주자급 스피커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언론을 타고 국민에게 전달돼 여론으로 형성된다. 정국을 관통할 수도, 뒤흔들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좋은 메시지로 ①우리 지지층은 뭉치게 하고 ②상대 지지층은 갈라놓고 ③중도무당층이 주목하고 공감하는 것을 꼽는다. 그래서 잠룡들의 메시지는 늘 전략적·정무적으로 철저히 계산돼서 나온다.
이 대표가 최 대행을 향해 '몸조심하기 바란다'고 밝힌 메시지는 과연 어떤 효과를 내고 있을까. 일단 상대 지지층을 분열시키는 효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여권은 똘똘 뭉쳐 이 대표에게 날을 세우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명백히 자신의 지지자들로 하여금 테러를 저지르라고 부추기는 불법 테러 선동"이라며 "이 대표야말로 협박죄 현행범이고 내란선동죄 현행범"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입장이 갈리는 여권의 대권 잠룡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탄핵 찬성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탄핵 반대파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각각 "깡패들이 쓰는 말" "이재명 특유의 폭력적 보복 광기"라고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 대표의 메시지는 오히려 민주당 내부를 갈라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친명(親이재명)계의 좌장으로 평가받는 정성호 의원은 3월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고 진화에 나섰다. 정 의원은 그러면서도 "권한대행이 헌법을 안 지키고 있다. 이것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이 대표가 대신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이 대표를 엄호했다. 하지만 비명(非이재명)계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한 전직 의원은 "이 대표와 지도부의 발언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국민 공감대를 넘어서는 수준이라 걱정된다"며 "굳이 저쪽을 자극해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필요가 있나"라고 꼬집었다.
중도층과 무당층은 이 대표의 메시지로 최 대행의 위헌적 침묵에 더 주목하고, 민주당의 입장에 좀 더 공감하게 됐을까. 민주당 내부에서는 오히려 이 대표의 강경한 메시지가 이 대표의 초조함과 당혹스러움을 드러내는 역설적 효과를 내고 있다는 반응이 상당하다. 실제 계파색이 옅은 한 민주당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자꾸 장외투쟁 행보로 헌재를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도 자칫 조급해 보인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거 같다"고 우려했다. 이날 대통령실이 최 대행의 경호 수준을 더 강화할 것이란 방침을 밝힌 점도 중도층을 겨냥해야 하는 이 대표 입장에서는 실점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독해진 이 대표의 메시지처럼 민주당은 당내 일각의 역풍 우려에도 헌재와 최 대행에 대한 압박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3월19일 오후에는 여의도 국회에서부터 광화문까지 걸으며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8일째 이어갔다. 이날 이 대표는 방탄복을 입고 도보행진에 처음으로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앞서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암살 계획'을 접수했다며 공개 외부활동을 최대한 자제해 왔으나 이날 처음으로 현장 최고위와 도보행진에도 함께했다.
민주당은 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절차를 개시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논란의 이 대표 발언이 있었던 3월19일 심야에 민주당은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최 대행 탄핵 여부에 대해 논의했다. 의총에서는 찬성 의견과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의총에 참석한 한 민주당 의원은 "최 대행이 헌재 판단을 무시하면서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줄탄핵' 비판과 그것들이 기각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부담을 우려하는 의견이 의원들 사이에 꽤 있었던 것 같다"고 당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최근 헌법재판소가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인에 대한 탄핵을 기각하면서 민주당의 '줄탄핵' 행보가 역풍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엔 최 대행 탄핵이 필요하다는 당 지도부와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힘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의총에서는 최종 결정권을 지도부에 일임했고, 최 대행 탄핵을 추진하기로 최종적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마은혁 임명 촉구는 대선 이후 대비용"
내부적으로도 걱정 어린 시선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표와 민주당이 투쟁 강도를 더 높여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공 드라이브'의 단계를 점차 더 높여가려는 이 대표와 민주당의 모습에선 몇 가지 심리가 엿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재의 선고가 늦춰지는 것과 관련해 헌재 내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대한 이 대표의 불안함이 감지된다. 헌재가 3월20일 "이번 주 내로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 공지가 없을 것"이라고 알리면서 윤 대통령 탄핵 선고는 3월 셋째 주를 넘어가게 됐다. 헌재 접수 기준 총 소요 기간, 변론 종결부터 선고까지의 기간 모두에서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때 기록을 훌쩍 넘겼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헌재가 선고를 내리지 못하는 것과 관련해 '헌재 내부에 이견이 큰 게 아니냐' '인용 정족수인 6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상당히 퍼져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민주당이 마 후보자 임명과 관련해 최 대행을 압박하는 것도 이러한 초조함에서 나온 반응이란 해석이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지금 이 대표와 민주당의 반응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많다. 윤 대통령 탄핵은 사실상 3월 넷째 주 이후로 알람시계를 맞추게 됐는데, 그 주의 수요일인 26일에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이 선고된 그 사건이다. 만일 대법원까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별의 순간에 가장 가까울 것으로 평가되는 이 대표의 최대 고비로 꼽히는 시점이기도 하다. 헌재가 3월24일을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선고일로 지정하면서 이 대표가 그 위기를 맞게 될 시나리오는 더 유력해졌다.
윤 대통령의 탄핵 선고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판단해 왔던 이 대표 주변에서는 이 시점까지 헌재 결론이 늦춰진 것에 대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만일 실제로 이 대표 2심 선고가 기존과 비슷한 정도의 유죄로, 탄핵심판 결론보다 먼저 나오게 될 경우 이 대표는 더욱더 위협적인 '사법 리스크'를 짊어진 채 대선 정국을 맞이하게 된다. 이 대표의 2심 선고 파장이 탄핵 선고의 파장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마은혁 후보자 임명을 촉구하는 배경에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아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직접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왔다. 사실 정치권이나 법조계에선 당장 최 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더라도 윤 대통령 탄핵 선고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선고에 참여하게 되더라도 '변론 갱신' 등의 이유로 시간만 더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李 사법 리스크 다시 '정국의 핵' 될까 부담
민주당의 마 후보자 임명 촉구는 '만일의 때'를 대비하기 위한 보험용이라는 해석도 최근 제기되고 있다. 만일 이 대표 선거법 2심에서 유죄가 나온다면 추후 대선에서 당선되더라도 헌법 84조(대통령 임기 중에 내란과 외환죄를 빼놓고는 소추당하지 아니한다)와 관련한 재판 중단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사전에 대비하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3월18일 시사저널TV에 출연해 이 같은 해석과 함께 "(재판 중단 문제와 관련해) 사실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헌재에 가서 할(판단을 구할) 수 있다"며 "그때 (진보 성향의) 마은혁 재판관이 헌재에 있으면 (민주당은) 안심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여권은 이 지점을 적극 주장하며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시키고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여당의 유력 정치인들은 "이 대표의 2심 선고 이후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며 이 대표의 2심 선고를 여론의 중심에 놓으려는 시도를 연일 이어가고 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가 본인 재판을 앞두고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할 위기에 처하자 이성을 잃은 것 같다"며 이 대표 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지금 이 대표와 지도부가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역풍' 대비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 대행 탄핵과 강경 발언 등이 탄핵 이후 대선 정국에서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이자 충고다. 계파색이 옅은 한 민주당 다선 의원은 "민주당이 철저히 이 대표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면서도 "대통령이 물러나게 되면 이제 평가는 이 대표와 민주당을 향하게 될 텐데, 어떤 결정을 할 때 더 멀리 보는 건 필요하다"며 조심스럽게 걱정을 드러냈다.
이 대표의 2심 선고 이후 윤 대통령 탄핵 선고까지 나올 경우 민주당이 지금처럼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분석도 있다. 3월초 이 대표가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21대 국회에서 있었던 자신에 대해 체포동의안 표결 상황과 관련해 '비명계가 검찰과 내통했다'는 취지로 언급하면서 비명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윤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갈등은 '일시 봉합'하고 일단은 똘똘 뭉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점은 이 대표로선 호재였다. 그러나 이 대표 2심 선고에서도 피선거권 박탈 수준의 유죄가 유지된다면, 조기 대선 정국에서 비명계가 이 대표를 강하게 견제하고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현재도 비명계 내에선 자칫 민주당의 행보가 '방탄 행보'로 비칠까 경계하는 분위기가 일부 감지된다.
여러 전망과 우려에도 민주당 지도부와 주류는 당장 장외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최 대행 탄핵을 비롯한 행보로 원내까지 전선을 넓힌다는 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도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친명계 의원은 "최 대행 탄핵 등에 있어 정무적 판단은 없다"며 "헌재가 선고를 늦출수록 강도는 더 세지고, 더 적극적으로 당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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