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선 지역 3곳이 방폐장 유치 자원…비결은 정보 투명성"
원자력발전소(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확보 계획이 담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향후 국내 부지 선정 과정에 관심이 모인다. 영국 원자력 전문가는 원전을 이용하는 대다수 국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궁극적인 처분 방식으로 지하 처분을 고려하고 있다며 처분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과 정보 공유라고 밝혔다.
데임 수 이온 영국 국립원자력기술아카데미 명예회장은 1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한국공학한림원(NAEK)과 영국왕립공학원(RAEng)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2025 한-영 클린 에너지 워크숍'에서 "궁극적인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만든다면 대부분의 국가가 지하 처분시설을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 이온 회장은 30년 이상 원자력 기술 개발 및 국제 원자력 협력 분야에서 활동하며 영국 원자력 기술개발과 정책 수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원자력 분야 권위자다.
발전에 쓰인 사용후핵연료는 사용 후에도 연쇄반응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열과 방사성 물질을 오랜 기간 방출한다. 원전 내에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되면 별도 처분장을 마련해야 한다.
지하 처분장 분야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핀란드다. 지하 처분장은 사용후핵연료를 공학적 방벽으로 감싸고 다시 안정적인 암반에 묻어 '자연 방벽'으로 둘러싸 수십만년 이상 저장하자는 것이다. 핀란드는 지하 420m에 있는 단단한 화강암에 지하 처분장을 지어 올해부터 세계 최초로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위해 발전소 부지 내 중간저장시설을 2050년, 영구 처분시설을 2060년까지 확보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수 이온 회장은 "영국은 보수적으로 생각했을 때 앞으로 30~40년 안에 지하 처분장이 완공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영국과 한국의 처분장 확보 예상 시기는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처분장 부지 선정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다. 한국은 부지 선정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영국은 지하 처분장 유치 검토 과정에 이미 지역사회 세 곳이 자원했다. 두 곳은 이미 원자력 관련 시설이 있는 영국 셀레필드 인근, 한 곳은 원자력 시설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곳이다.
수 이온 회장은 처분장에 대한 국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핵심으로 투명성과 정보 공유를 꼽았다. 그는 "제일 중요한 것은 팩트가 모두 공개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사실 관계와 당면과제, 과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해 지하 처분장 유치가 지역 주민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 이온 회장은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이 '부활'하고 있는 이유로 2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탄소 절감 목표 달성이다. 탄소 배출량이 0이 되는 '넷 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원자력발전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수 이온 회장은 "재생에너지인 풍력과 원자력발전이 탄소발자국 측면에서는 비슷하다"며 "풍력발전과 달리 원자력발전은 24시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후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공급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생겼다는 관점이다. 유럽의 에너지 안보가 외부 정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절감해 원자력에너지 전환 필요성을 느꼈다는 분석이다.
수 이온 회장은 "원자력에너지가 인류에 큰 가치를 주는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한다"며 핵융합 발전 등 미래 청정에너지원 도입까지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 등이 많다고 밝혔다. 아직 차세대 에너지원 도입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원자력에너지를 잘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는 "지금은 원자력에너지를 전력공급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열 공급 자체에도 원자력에너지를 활용한다면 대규모 산업 분야에서도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워크숍은 한국과 영국이 원자력 기술 및 정책 분야에서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동 연구 및 산업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
수 이온 회장은 "한국이 원자력에너지, 발전소 건설, 수출 등에 있어서 한국 내에서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실제 성공 사례를 이뤄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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