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지 반환 언급 쏙 빠져… “러에 훨씬 유리한 ‘무늬만 휴전’”
푸틴 “美, 우크라 지원 중단해야”… 휴전안 합의에도 드론 등 공격 계속
美 “에너지 및 인프라 공격 중단”에… 러는 “에너지 인프라” 도로-항만 제외
18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30일간의 ‘에너지·인프라’ 부문 휴전에 합의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과 우크라이나에 자신의 기존 주장을 거듭 강조했다.
이번 휴전안에는 우크라이나가 요구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반환,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종전 후 유럽 주요국이 구성한 평화유지군의 우크라이나 주둔 등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온 미국의 지원 중단을 다시 한번 강조한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이 사실상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휴전안이 러시아만 유리한 ‘무늬만 휴전’이란 평가도 나온다.
향후 휴전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성명에서 휴전 범위를 ‘에너지 및 인프라(energy & infrastructure)’로 규정했지만,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은 ‘에너지 인프라(energy infrastructure)’로 밝혔다. 미국은 도로 항만 공항 등도 공격 제외 대상에 포함시킨 반면 러시아는 에너지 관련 시설만으로 한정한 셈이다. 공격 제한 범위를 확대해 전면 휴전, 나아가 종전으로 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공교롭게도 18일은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는 남부 크림반도가 2014년 러시아에 강제 합병된 지 11년을 맞은 날이다. 푸틴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주요 치적으로 삼는 기념일에 러시아에 유리한 휴전안까지 발표한 셈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세머포’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빠른 종전을 위해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공식 인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파병 등 안보 보장을 선결 조건으로 내건 우크라이나와 서유럽 주요국의 입장과는 크게 다른 것.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의 목표는 독립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존립을 끝내고 나토 확장을 (동구권 공산주의 붕괴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는 이날 휴전 직후에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병원 등 주요 민간 시설에 잇따라 무인기(드론) 공격을 가했다. 또 현재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일대 또한 돌려주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 트럼프, 푸틴 비판 대신 “생산적 통화” 자찬
이번 부분 휴전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더 밀착하며 종전 협상이 우크라이나에 불리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정보 지원을 잠시 중단했다. 그는 18일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에도 트루스소셜에서 전면 휴전을 안 받아들인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신 “(통화가) 매우 좋았고 생산적이었다”고 자찬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러시아를 두둔하는 사례도 계속 포착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뒤 미국의 주요 정보기관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때 시작된 유럽 우방국들과의 협업을 대부분 중단했다.
전쟁 기간 중 러시아가 강제 납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 아동 3만5000명에 대한 미국 국무부의 데이터베이스(DB)도 최근 삭제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푸틴 정권이 러시아의 인구 감소를 막고 우크라이나의 러시아화를 추진하기 위해 아동을 강제 납치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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