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분쟁 속 LS 지분 사들인 호반…그룹 싸움으로 확전?

허인회 기자 2025. 3. 1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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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 특허 소송 항소심서 승소…㈜LS 지분 매수한 호반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관련 조 단위 소송전 대비 나섰나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호반그룹이 분쟁 당사자 LS그룹의 지분을 매수하면서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호반그룹 사옥 전경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국내 전선업계 1, 2위인 LS전선과 대한전선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특허 침해 소송에서 LS전선이 승기를 잡은 가운데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경찰 수사가 조 단위 소송전까지 비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국면에서 대한전선의 모회사인 호반그룹이 LS전선의 모회사인 ㈜LS 지분을 사들이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선업계의 갈등이 소송전 추이에 따라 그룹 간 싸움으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법원은 최근 부스덕트(Busduct) 특허 침해 소송에서 또 한 번 LS전선의 손을 들어줬다. 3월13일 특허법원 제24부(부장판사 우성엽)는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침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LS전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고, 대한전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배상 규모를 1심(4억9000만원)보다 3배 수준에 이르는 약 15억원으로 늘렸다.

이번 소송은 2019년 LS전선이 '대한전선이 제조·판매하는 부스덕트용 조인트 키트 제품이 자사의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소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LS전선의 하청업체에서 조인트 키트 외주 제작을 맡았던 직원이 대한전선으로 이직한 후 유사 제품을 출시하자 기술 유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최근 양측의 대결 구도와 감정 대립을 고려하면 대한전선이 상고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1심에 이어 2심까지 LS전선이 승소하면서 사실상 무게의 추가 기울었다는 분석이다.

강원도 동해에 위치한 LS전선 해저케이블(HVDC) 전용 공장 전경 ⓒLS전선 제공

연이은 소송전…진짜 게임은 이제 시작?

양사는 특허소송 뿐만 아니라 기아 화성공장 정전 사고 관련 소송에서도 다투고 있다. 특허 소송과 달리 해당 소송에선 대한전선이 유리한 고지에 오른 상태다.

앞서 2018년 9월 기아는 화성공장에서 발생한 정전 사고로 생산 라인이 멈추면서 182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 이후 신평택 복합화력 발전소 공사를 위한 지중송전선로 이설 과정에서 발생한 하자와 과실을 정전의 원인으로 지목한 기아는 공사에 참여한 LS전선과 대한전선 등을 상대로 128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LS전선은 대한전선이 공급한 기중종단접속함(EBA)의 제조 결함이 있다며 연대 책임을 주장했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LS전선에만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배상 규모는 72억원에서 54억원으로 줄었다. 불복한 LS전선은 올해 1월 상고장을 접수한 상태다.

법정 싸움에서 1승1패를 거둔 양측은 또 한 번 소송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의혹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경찰은 현재 LS전선이 보유한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노하우가 건축사무소를 통해 대한전선에 유출됐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대한전선에 대한 3차례 압수수색도 했다.

LS전선은 대한전선이 기술 유출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대한전선이 먼저 가운건축에 연락해 설계를 요청했고, 계약금액도 자사의 2배 이상이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대한전선은 경쟁입찰 방식을 통해 공정하게 사업자를 선정했으며, 가운건축이 해저케이블 설비 및 제조기술 관련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 기술 유출은 없었다고 맞서고 있다.

조만간 경찰 수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기술 탈취로 결론이 날 경우엔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LS전선이 이미 소송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구본규 LS전선 대표는 지난해 9월 '밸류업 데이'에서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은 임직원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공장으로 어느 회사도 알려주지 않은 것을 우리가 반복적으로 실수하며 몸으로 때우며 갖게 된 기술"이라며 "만약 실질적으로 지적 재산에 대한 탈취 문제가 있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구 대표는 구자엽 LS전선 명예회장의 아들로 'LS 오너가 3세'다.

업계에선 이번 사건이 소송으로 번질 경우 LS전선 측이 조 단위의 피해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저케이블 설비와 기술 개발에 쏟은 비용이 1조원이 넘기 때문이다.

충남 당진에 위치한 대한전선의 케이블 공장 전경 ⓒ연합뉴스

난데 없는 경쟁사 지분 매수…장기전 포석?

소송과 수사로 양사의 갈등의 골이 깊은 가운데 대한전선의 모회사인 호반그룹이 ㈜LS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전선 업계 투톱의 갈등이 자칫 그룹 간의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호반그룹은 계열사를 통해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LS전선의 모회사인 ㈜LS의 지분 매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그룹이 확보한 ㈜LS 지분은 3%가량이다. 호반그룹 측은 "순수한 재무적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상대 회사 측의 지분을 매입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상법상 지분 3% 이상을 확보한 주주는 기업의 장부·서류 열람을 청구할 수 있고, 임시주총 소집, 주주제안, 이사·감사 해임요구 등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일각에선 LS그룹 경영 구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현재 LS그룹은 구자열 이사회 의장과 친인척 43명이 총 32.15%의 지분을 나눠 가진 집단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 최대주주인 구자은 회장의 지분은 3.63%에 불과하다. 사촌경영 체제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분이 흩어져있는 상황이라 특정인의 절대적 경영 지배력은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이유로 이번 지분 매수를 놓고 해저케이블 관련 조 단위 소송전이 시작될 경우 호반이 LS의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LS가 보유한 자사주는 전체 주식의 15%(485만2462주) 수준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분쟁 상황에서 제3자 등에게 양도하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최대 47%가 넘는 지분을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장재혁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번 호반그룹의 LS 지분 매입에 대해 일각에서는 LS그룹 경영 구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포석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지만, 근거는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다만 외부 주주의 참여에 따라 LS 지배구조의 안정성이 흔들릴 여지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최근 LS의 잇단 중복상장 우려에 투자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현재 ㈜LS의 미국 자회사 에식스솔루션즈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LS일렉트릭의 자회사 KOC전기는 코스닥시장 상장을 계획 중이다. 자회사 상장을 연이어 추진하면서 기존 주주들은 보유주식 가치가 희석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3월5일 열린 2차전지 행사에서 "중복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고 발언하며 성난 투자자들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기도 했다. 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상황에서 향후 호반이 주주행동의 구심점으로 나설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측의 갈등이 격화될수록 호반 측이 ㈜LS 지분 비율을 더 늘릴 가능성이 있다"며 "소송전과 함께 주주로서 권리행사에 나설 경우 LS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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