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다고?

허시언 기자 2025. 3. 1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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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 연구·개발 및 군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민감국가로 분류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인데요.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상대로 민감국가 지정이라는 ‘옐로카드’를 꺼낸 건 최근 국내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핵보유론, 핵무장론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의도로 풀이됩니다.

미국 에너지부 청사. UPI 연합뉴스


미 에너지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한국이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됐다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이런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올해 초 이전 정부인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미 에너지부 대변인은 “바이든 정부는 2025년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Other Designated Country)’에 추가했다”고 밝혔죠.

민감국가는 정책적 이유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국가를 뜻합니다. 미 에너지부는 국가 안보, 핵 비확산, 지역적 불안정성, 테러 지원 등의 이유로 민감국가를 지정할 수 있는데요. 이 목록은 에너지부 산하 정보 기구인 정보방첩국(OICI)이 국가원자력안보국(NNSA) 등과 함께 관리합니다. 그간 미국은 중국 러시아 이란 시리아 북한 등을 민감국가로 지정했습니다. 모두 미국의 적대국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민감국가로 분류되면 원자력·인공지능(AI)·양자과학 등 첨단 안보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교류·협력이 엄격하게 제한됩니다. 다만 미 에너지부는 ”현재 한국과의 양자간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민감국가에 포함됐다고 해서 미국인이나 에너지부 직원이 해당 국가를 방문하거나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마찬가지로 해당 국가 국민이 에너지부를 방문하는 것도 금지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문과 협력은 사전에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 말했죠.

여기서 양측 간 방문과 협력이 ‘사전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 밝힌 만큼 어느 정도의 제한이 가해지는 것은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반도체·AI 등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산업 재편을 모색하며 주요국들과 기술 경쟁을 벌이는 한국으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특히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 국제 협력 중에서도 우방국인 미국의 역할을 강조해왔는데, 이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에 큰 지장이 생기는 셈입니다. 협력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이 갑작스럽게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된 원인에 대해 아직 명확히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최근 국내 정치권을 중심으로 대두되는 자체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잠재적 핵보유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데요. 이는 북한의 핵 위협이 어느 때보다 가중된 상황과 관련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최고 수준의 군사 협력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이익 우선주의’ 기조가 뚜렷해지자 더 이상 미국의 동맹과 안보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됐고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국)’라고 지칭하며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줬죠.

그러면서 자체 핵무장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습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 여당 인사들은 최근 ‘핵무장’ ‘핵보유’를 강하게 주장했죠.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도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인지한 미국이 동북아 핵 도미노를 우려해 한국의 민감국가 지정을 결정했다는 것.

외교부는 한국이 이미 두 달 전에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됐음에도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감국가 분류가) 확정된 것은 아니며, 비공식 제보를 받고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는데요. 민감국가 적용 시한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에서 미국 측으로부터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조차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정부의 대응이 늦는다는 비판과 관련해 “에너지부 외에는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미 정부 관계 기관들과 긴밀히 협력 중”이라며 “한미간 에너지, 과학기술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적극 교섭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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