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들 지키려”…다시 모인 100만 시민 ‘윤석열 파면’ 외침
14개월 딸을 둔 새내기 아빠 신승룡(34)씨가 무대 올라 수줍게 웃었다. “함께 집회에 온 제 아내, 할아버지 할머니랑 놀고 있는 사랑하는 딸 나현이, 이곳에 함께 하는 사랑하는 동지들….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이 15일 서울 경복궁역에서 안국역 주변에 이르는 도로 900여미터와 주변 골목·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날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5차 범시민대행진’(범시민대행진)에는 시민 100만명(주최 쪽 연인원 기준 추산, 경찰 비공식 추산 4만명)이 참여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난해 12월14일 여의도 국회 앞 집회 이후 가장 많은 시민이 몰렸다. 경복궁역을 나오기까지 긴 줄을 늘어서야 했고 도보 이동 또한 쉽지 않았지만, ‘대통령 파면과 함께 봄을 맞겠다’는 의지는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결연했다. 다수 전망처럼 내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이뤄진다면 “대통령 파면”을 외치는 마지막 주말 집회가 될 터였다.
윤 대통령 석방이 이뤄진 가운데, 헌재의 대통령 파면 선고 일정 또한 안갯속인 상황에 대한 불안이 컸다. 탄핵 소추 이후 오랜만에 집회를 찾았다는 이들이 많았던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김현우군은 “12월 여의도 집회 이후 정말 오랜만에 참여한다”며 “여당조차 극우 목소리를 이어가고, 윤 대통령 구속이 취소되고, 선고도 지연되는 상황이 불안해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온 김상도(49)씨는 “그동안 그냥 잘 진행되리라 믿고 있었는데, 윤 대통령 석방 뒤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들어 처음 집회에까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는 다양한 자리에서 민주주의 후퇴를 염려하는 시민들이 올랐다. 광주에서 왔다는 김정경(68)씨는 12·3 내란 사태 이후 꼭 쥐고 있었다는 ‘아미밤’(가수 방탄소년단 응원봉)을 비롯해 그간 거쳐온 응원봉들을 소개하며 “계엄을 2번 겪었다. 5.18을 생각하면 시체 썩는 냄새를 줄이려 피웠던 향 냄새, 계엄군 진입할 때 들렸던 총소리, 그것들의 이미지가 4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윽고 “저들이 더 어두워질수록 힘이 난다”며 “12.3 이후에 한국 현대사를 저와 여러분들이 공동 집필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 과거가 현재를 도왔듯이 지금 우리가 미래를 돕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들도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그간 탄핵 촉구 광장이 강조해 온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대표는 “우리는 모두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똑같이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라며 “윤석열을 파면해야 장애인도 시민으로 인정받고 이동하는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외쳤다.
한편에선 윤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위협과 혐오에도 개인을 향한 비난 대신 그를 낳은 구조에 분노하자는 다짐도 이어졌다.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시민은 “서부지법을 박살 낸 폭력과 우리의 선의를 조롱하는 악의를 안다. 하지만 윤석열이 파면되고 내란세력이 처벌 받고 나면 이들과도 다시 공존해야 한다”며 “용서하잔 말씀은 드리지 않겠지만, 분열을 만들고 이득을 취하는 잘못된 정치, 기득권에 대해서 한 번만 더 생각해달라”고 했다. 사회자로 나선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도 “저들의 구호는 언제나 죽이자, 처단하자, 말살하자다. 하지만 우리의 구호는 지켜내고, 회복하고, 바꿔내자여야 한다”며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이해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날 시민들은 과거와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 때 거리에 울렸던 ‘아침이슬’과 ‘다시 만난 세계’를 이어 부르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어 안국동을 거쳐 종로를 돌아 집회 현장으로 돌아오는 행진에 나섰다. 수많은 인파로 뒤에 섰던 시민이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하는 데만 40여분이 걸렸다. 길게 이어진 행진 행렬로 메워진 서울 도심 거리에선 “주권자의 명령이다 윤석열을 파면하라” 구호가 대중가요와 함께 울렸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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