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 소리 내는 사람들, 저 예산 호러 영화의 매력
[최해린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포리아>,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등으로 잘 알려진 배우 헌터 샤퍼 주연의 영화 < 뻐꾹! >이 국내 VOD 시장에 공개됐다. 저예산 호러에 SF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이 작품은 왜 미국 평단의 주목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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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뻐꾹!> 스틸컷 |
ⓒ NEON |
여기까지만 보면 '사람'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 스릴러 영화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따금 같은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면서 암시되는 '시간 루프'의 존재가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영화의 초중반, 그 중심을 지키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주인공의 성격이다. 그레첸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쫓기고 이질적인 시간 루프를 경험하면서도 오직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한다. 바로 미국에 있을 엄마에게로 돌아가는 것.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엄마의 음성사서함에 전화를 남기며 마음을 다잡는다.
모든 게 이상한 타지에서 벗어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려는 그레첸의 욕망은 강렬하고 원초적이다.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호러·SF적 요소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관객도 주인공의 여정을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그렇다고 각종 소재를 여기저기 던져만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 뻐꾹! >의 후반부는 빠르게 휘몰아치는 전개를 택하면서도, 전반부에서 품었을 의문을 속 시원하게 해소해 준다. 그레첸의 가족이 온 곳은 일종의 생체 실험실로, 인간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말 대신 새소리만을 낼 수 있는 '뻐꾸기 인간'들을 보존·연구하는 공간이었다. 실제 뻐꾸기가 다른 새들의 둥지에 탁란(托卵)하는 것처럼, 이 뻐꾸기 인간들은 다양한 가정에 숨어들어 아이를 낳았다가 일정 나이가 되면 되찾아가는 존재들이었다.
시간 루프는 그들의 특이한 울음소리에서 비롯된 정신적 착란이었음이 드러나면서 그레첸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다른 새 둥지에 있던 뻐꾸기알처럼 겉돈다는 느낌을 받던 그레첸이 결국 다른 '외톨이'를 포용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모습은, 공상적인 소재가 낯선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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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유포리아> 스틸컷 |
ⓒ HBO |
헌터 샤퍼는 배우이기 이전에 모델 겸 사회운동가로, 다양한 진보적 의제에 앞장서는 인물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 보호를 호소하는 집회에 나섰다가 주 경찰에게 구금됐다. 자신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적극 활용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활동도 다각도로 전개하는 등 입지전적인 '투사'의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샤퍼 본인은 자신의 이러한 모습이 결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일례로 헌터 샤퍼는 2024년, GQ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수많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다룬 배역 제안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 이상의 역할을 소화하고 싶다고 했다. 배우의 이미지에 지나치게 맞는 배역만 하게 되는 타입캐스팅(typecasting)의 덫이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더욱 가혹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 뻐꾹! >의 그레첸은 그런 샤퍼의 의중을 반영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정체성과는 상관없는 역할이다. 그저 영화 속 처지에 놓인 한 여성으로 묘사될 뿐이다. 관객들은 별다른 부연 장면 없이도 그레첸 역시 샤퍼와 같은 정체성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고, 배우와 배역을 별개로 보게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간에, 샤퍼가 맡은 그레첸은 단순한 '트랜스젠더'나 '레즈비언'이기 이전에 평범한 '공포 영화의 여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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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뻐꾹!> 스틸컷 |
ⓒ N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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