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설 자리 좁아지는 느림보 골퍼들 [임정우의 스리 퍼트]
샷 클록·거리 측정기·비디오 센터 등
PGA·LPGA 새로운 규정 적극 도입
KPGA·KLPGA도 검토 후 변화 예정
골프가 지루한 스포츠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전세계 주요 프로골프 투어가 칼을 빼들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DP월드투어 등에서 벌금을 기본으로 하면서 벌타, 포인트 삭감 등까지 검토하고 있다. 과거와 다르게 경고에 그치지 않고 ‘느림보 골퍼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프로골퍼에게 치명적인 벌타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다.
올해 슬로 플레이 문제로 가장 시끄러웠던 프로골프 투어는 PGA 투어다. 지난 3일 막을 내린 AT&T 페블비치 프로암 최종일 챔피언 조 선수들의 경기 시간이 5시간30분을 넘었고, 지난달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는 마지막 조 선수들이 18개 홀을 모두 도는 데 6시간 가까이 걸려 비판을 받았다.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가 시청률 감소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시청자 수가 지난해보다 19% 가까이 줄었다고 보도했다. 시청률이 떨어지면 중계권의 가치까지 함께 하락하는 만큼 PGA 투어는 슬로 플레이를 뿌리 뽑기 위한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다.
빠르면 2025시즌에서 늦어도 2026시즌 새롭게 도입할 여러 방안 가운데 핵심은 샷 클록 제도다. 농구와 테니스 등처럼 플레이 타임을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샷 클록 제도다. 모든 선수가 동일하게 40초 또는 50초 안에 샷을 해야 하는 만큼 라운드당 소요 시간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프로골프 투어는 첫 번째 선수는 50초, 다음 선수는 40초 이내에 샷을 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R&A 경기 운영 매뉴얼을 따르고 있다.
PGA 투어의 변화는 한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거리 측정기 사용을 허용하고 벌금 규정 강화, 페덱스컵 포인트 삭감, 선수별 평균 스트로크 시간 공개, 비디오 리뷰 센터 운영 등까지 고려하고 있다. PGA 투어가 샷 클록 제도 도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MLB는 2023년 투수가 특정 시간 안에 공을 던져야 하는 피치 클록을 도입한 뒤 평균 경기 시간이 30분 가까이 단축됐다. 이로 인해 시청률과 현장을 찾는 관중 수는 2년 연속으로 증가했다.
대부분의 PGA 투어 선수들도 샷 클록 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병훈은 “특정 시간 안에 공을 치지 못했을 때 벌타가 부여되면 선수들의 플레이 속도는 자연스럽게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르다(미국)는 새로운 경기 속도 규정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선수들의 경기 속도와 관련된 새로운 규정이 도입되는 것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예전부터 좀 더 가혹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도 골프계에 불고 있는 새로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PGA 투어와 동일하게 샷 클록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KPGA 투어는 올해 18홀 평균 라운드 시간을 4시간25분 이내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KPGA 투어 선수들의 라운드당 평균 소요 시간은 4시간 35분이었다.
시간 단축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팬들이 이탈하는 원인인 슬로 플레이를 막고 PGA 투어와 콘페리투어 등 진출을 원하는 선수들이 새로운 무대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권청원 KPGA 투어 경기위원장은 “지난해 40초 룰을 위반해 배드 타임 경고를 받은 선수가 3명 밖에 없을 정도로 KPGA 투어 선수들의 속도는 빠른 편이다. 그럼에도 조금 더 박진감 넘치게 만들고 선수들이 다른 투어에 나갔을 때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샷 클록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PGA 투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라운드당 소요되는 시간을 4시간 16분으로 잡는다. 한국 골프장의 경우 홀과 홀의 이동 거리가 길고 산악 지형이 대부분인 만큼 4시 25분을 올해 목표로 설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PGA 투어가 검토하고 있는 모든 정책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권 위원장은 “아직까지 거리 측정기 사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변화를 가져가면서 KPGA 투어에 필요한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2023년 변형 샷 클록 제도를 도입하고 거리 측정기 사용을 허용한 KLPGA 투어도 선수들의 경기 속도 개선을 위해 더욱 더 신경쓰겠다고 밝혔다. 2023년까지 5시간35분으로 조사됐던 KLPGA 투어 선수들의 라운드당 평균 경기 시간은 지난해 5시간14분으로 줄었다.
KLPGA 투어 한 관계자는 “골프장의 난도가 높아 경기 진행이 더딘 몇몇 대회를 제외하고는 KLPGA 투어 선수들의 경기 속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전반을 마친 뒤 휴식 시간을 갖지 않는 상반기 대회의 평균 경기 시간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5시간의 벽을 깨고 4시간 58분을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지연 플레이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높여 효과를 본 KLPGA 투어는 올해도 동일하게 적용한다고 밝혔다. KLPGA 투어 한 관계자는 “경기 시간 단축에 힘써 더욱 박진감 넘치는 KLPGA 투어를 만들겠다. 선수들의 경기 속도가 매년 빨라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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