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 바뀐 여야... 이재명 “추경·연금개혁 하자”에 허 찔린 국민의힘
'중도층 외연 확장' 실용주의 행보 계속
與 "정국 전환 위한 꼼수" 비판하면서도
'이재명 제안' 마냥 뿌리치는 것도 부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추가경정예산과 연금개혁 카드를 선제적으로 꺼내며 정부 여당을 압박했다. 우선 “민생지원금 때문에 추경을 못 하겠다면 이를 포기하겠다”며 정부 여당이 현금 살포라고 비판해온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 정책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죽어가는 민생 경제의 심장을 살릴 추경을 신속하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연금개혁과 관련해선 “국민의힘 성과로 만들어도 좋으니 모수개혁(보험료율∙소득대체율)부터 2월 안에 매듭짓자”고 제안했다.
‘반(反)이재명’만 외쳤던 국민의힘은 ‘이재명표 정책’마저 과감히 포기하겠다는 이 대표의 전향적 민생 드라이브에 허를 찔렸다. “정국 전환을 위한 꼼수”, “국민을 호도하기 위한 립서비스”(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라고 비판했지만 ‘민생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하자’는 이 대표의 제안을 마냥 뿌리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당정 주도로 추경과 연금개혁을 추진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 조기 대선 국면에서 야당에 정국 주도권마저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신년회견 기점 연일 실용주의 행보
설 연휴 이후 처음 열린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는 수권 정당 리더의 면모를 부각하는 데 치중했다. “설 연휴 전후 민주당 지방정부가 주도한 지역화폐 발행으로 얼어붙은 지역 경제 온기가 살아났다”고 운을 뗀 이 대표는 ‘한국이 20조 원 추경을 집행하면 연평균 0.2%포인트의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전망을 언급하며 추경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 정책이 정부 여당의 추경 추진에 발목을 잡는다면 과감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지난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이재명표 실용주의의 연장선상이다.
실제 이 대표는 신년회견을 기점으로 ‘정치인 이재명’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와 선을 긋고 “경제 위기 극복이 먼저”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내고 있다. 이날도 “민생의 온기를 불어넣을 민생지원금은 차등, 선별지원이라도 괜찮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또 2월 3일에는 반도체특별법 정책 토론회를 직접 주재한다. 고소득 전문직 주 52시간 예외와 관련해, 반도체 업계와 노동계 의견을 두루 들어보겠다는 취지로 "기업 주도 성장의 길을 열자"고 강조했던 그가 입장을 선회할지 여부가 관심사다.
“연금개혁, 1%p 차로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
이 대표는 또 이날 21대 국회 막바지에 여야의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에 대한 견해차 등으로 무산된 연금개혁과 관련해 “1%포인트 차이 때문에 안 하는 것보다 불만스럽더라도 하는 것이 낫다”라며 “그게 정치 아니냐”고도 했다. 여당에 선제적으로 양보할 의향이 있으니 모수개혁만이라도 마침표를 찍자는 것이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렸던 여야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는 데는 합의했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을 놓고 줄다리기(국민의힘 44%, 민주당 46%)가 이어지는 와중에 정부 여당에서 구조개혁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더 이상 진도가 나아가질 못했다.
셈법 복잡해진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머릿속이 복잡한 표정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최근 추경안 편성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큰 틀에선 야당과 협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자칫하면 ‘여당에 선제적으로 양보하는 모양새로 정국을 주도하려는’ 이 대표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어서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올해 예산안을 삭감한 상황에서 곧바로 추경을 추진하려는 모순된 행보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이 “민주당이 추경을 입에 올리려면 작년 말 예산안 강행 처리에 대한 대국민 사과가 우선”이라며 “국민의힘은 추경 요인이 있을 때 여야정이 협의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제안한 ‘모수개혁 완료’와 관련해선 국회 연금개혁특위를 구성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JK김동욱 고발 근거 출입국관리법, "모호·유명무실" 비판 | 한국일보
- '극우 진영 스피커'로 부상한 전한길, 유튜브 구독자 100만 명 넘겨 | 한국일보
- "보조배터리에 절연 테이프 감으라고?"…유명무실 항공기 수하물 규정 | 한국일보
- 방만 10개… 장동민, 3층 규모 원주 본가 공개 ('독박투어3') | 한국일보
- MBC ‘직장 내 괴롭힘’ 의혹 오요안나 사망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 한국일보
- 문형배 "블로그 원문 읽어보시죠"… 與 '15년 전 글 비판'에 반박 | 한국일보
- 이재명 "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도 포기할 테니 추경하자" | 한국일보
- 타히티 출신 지수, 둘째 유산 고백 "죄책감 들었다" | 한국일보
- “여왕벌이 없잖아”… 벌통 판매 양봉업자 살해·암매장 70대 검거 | 한국일보
- 이장우, 조혜원과 결혼 앞둔 소회 고백… 전현무에게 주례 요청까지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