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휩쓴 이집트 작가, 판소리에 꽂혔다?! [요즘 전시]

이정아 2025. 1. 1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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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미술관서 선보인 와엘 샤키의 첫 개인전
우리 판소리 통해 사랑의 다층위적 면면 고찰
와엘 샤키, 러브스토리, 2024. 판소리꾼이 한국의 구전설화 ‘금도끼 은도끼’를 판소리로 부르는 장면.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대구)=이정아 기자] 지난해 열린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긴 줄이 늘어선 국가관 중 하나가 이집트관이었다.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며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그곳의 주인공은 바로 이집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와엘 샤키(54). 당시 그는 제국 통치에 저항한 이집트의 ‘우라비 반란(1879~1882)’을 왈츠풍 선율에 맞춰 한 편의 뮤지컬처럼 재해석한 영상 작품 ‘드라마, 1882’(2024)를 선보였다. ▶관련기사 [영상] 외국인인가, 점령자인가…동화 같은 이집트관의 난센스 [베니스 비엔날레 2024]

그런 샤키의 또 다른 작품들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대구미술관이 신화와 물질주의적인 현실의 관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연결한 영상, 조각, 설치 등 그의 작품 70여 점을 내달 23일까지 전시하면서다.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에서 선보이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와엘 샤키, 러브스토리, 2024. 판소리꾼이 한국의 구전설화 ‘토끼의 재판’을 판소리로 부르는 장면. [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2024 해외교류전 ‘와엘 샤키’ 전시 전경. 이정아 기자.

우선 넓고 탁 트인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관람객들은 판소리 가락으로 펼쳐지는 세 가지 이야기에 빨려들게 된다. 10분 이내의 영상 작품마다 판소리꾼이 등장해 한국의 구전설화이거나 전래동화인 ‘누에 공주’, ‘금도끼 은도끼’, ‘토끼의 재판’을 들려주면서다. 샤키의 신작 ‘러브스토리’(2024)는 한국의 전통적인 이야기 서사를 따르는 듯 하면서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각적으로 탐구해 맥락을 확장한다.

예컨대 ‘누에 공주’에서는 자신을 희생해 공동체를 구원하는 사랑의 숭고함이, ‘금도끼, 은도끼’에서는 정직함에 깃든 사랑의 윤리적 가치가, ‘토끼의 재판’에서는 정의 실현을 위한 사랑의 책임감이 드러난다. 우리에겐 익숙한 전통 서사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순간이자,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생의 여러 층위에 걸쳐 구현되는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과도 연결된다. 니체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욕망이 아닌, 삶의 근본적인 방식이자 존재의 핵심적인 힘이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 와엘 샤키. 이정아 기자.

특히 작품마다 색상이 반전된 화면이 눈길을 끈다. 샤키는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주제와 음악을 극적으로 부각시켜 관람객의 몰입을 강화하기 위해 이런 효과에 집중했다.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식의 비유가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그는 “빛과 색을 반전시켜 캐릭터의 통속적 연기나 얼굴 표정을 가릴 수 있다”며 “이로 인해 이전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세부 사항들이 관람객의 시야에 들어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작업 방식은 서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어린 아이들이나 마리오네트나 가면을 쓴 인물들이 등장해 연기를 하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도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밖에도 고대 이탈리아 도시 폼페이를 배경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고대 이집트 종교 간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나는 새로운 신전의 찬가’(2023), 상이집트(Upper Egypt)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을 딴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I’(2012) 등 각 도시와 문명의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도 전시돼 있다. 샤키는 “특정 장소와 여러 문화의 기원을 해석하는 일이 무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한국의 판소리는 이전에 작업한 바레인의 피제리나, 파키스탄의 카왈리 등 다양한 전통 민속 음악을 떠올리게 했다”고 전했다.

대구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2024 해외교류전 ‘와엘 샤키’ 전시 전경. [대구미술관]

오는 5월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샤키의 영상 작품 ‘드라마, 1882’(2024)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 소속 후원회를 통해 해당 작품을 기증받아 소장하게 됐다.

한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유년기를 보낸 샤키는 유목민 사회에서 근대화된 사회, 그 사이 경계에서 성장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그는 역사와 신화에 대한 독창적인 시각을 작품에 담아내는 작품세계로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됐다. 샤키는 영국의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ArtReview)가 해마다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지난해 6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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