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투표소, 줄어든 유권자… 기후 위기는 ‘선거 위기’ [세계는 지금]
印尼 홍수·美 폭풍… 투표소 운영 차질
인도에선 폭염 탓 유권자 등 사망 속출
美대선 유세 땐 열사병으로 다수 입원
알제리 역대급 더위에 대선 투표율 뚝
이례적 선거일 변경 조치에도 역부족
기후변화 일상 위협… 시민 관심 커져
영국선 ‘COP27’ 불참 선언에 논란 일어
선거 땐 경제 문제에 우선순위 밀리기도
美, ‘기후변화 사기극’ 외친 트럼프 당선
유럽의회·독일 녹색당 성적도 기대 이하
지난 2월 총선이 치러진 인도네시아에선 투표 시작 전부터 강한 뇌우와 홍수로 차질이 빚어졌다. 중부 자바주 드막 지역에선 홍수로 인해 108개 투표소가 운영되지 않았고, 자카르타의 일부 투표소는 홍수로 인해 침수됐다.
결국 하심 아시아리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위원장은 선거가 공식 종료된 후 자연재해, 치안 문제 등으로 “4개 주 5개 지역의 668곳 투표소에서 투표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후속 투표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유권자 2억500만명 중 재외국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표를 하루 6시간 안에 마치게 하는 게 원칙인 것을 고려하면 예외적인 결정인 셈이다.
지난 4월부터 6월1일까지 진행된 인도 총선에선 폭염으로 최소 2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섭씨 5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투표소를 오가거나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다 사망하는 유권자는 물론 선거를 관리하는 직원들도 피해를 보았다.
문제는 저조한 투표율이었다. 지난 9월7일 진행된 선거에서 투표소들은 대체로 텅 빈 상태였다. 일부 지역의 극심한 폭염으로 사람들이 투표소를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제리의 경우에는 폭염으로 인해 투표 날짜를 변경할 정도로 폭염이 선거에서 주요 쟁점이었다.
선거 유세 현장 역시 기후변화와의 싸움이었다. 미국 대선의 경우 지난 6월부터 3개월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유세에 참여한 사람 중 최소 78명이 열사병으로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집회에서도 참석자 한 명이 열사병을 앓으며 집회가 중단됐다.
경합주로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애리조나주와 네바다주는 미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알려진 피닉스와 라스베이거스가 위치해 있다. 특히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지난 6월 기온이 37.7도 이상이었던 날이 28일에 달할 정도다.
기후변화가 일상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자 유권자들 역시 기후변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영국인 2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보수당이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정책을 계속 반대할 경우 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영국 유권자의 경우에는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를 경제, 건강, 이민 문제에 이어 4번째로 중요한 의제로 꼽기도 했다.
리시 수낵 전 영국 총리는 2030년 시행 예정이었던 내연기관차 운행 금지를 5년 연기해 “기후정책이 후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2년에는 취임 사흘 만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불참을 선언하며 논란을 낳기도 했다. 당시 그는 “정부 가을 예산 편성 등 더 급한 국내 공약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전년도에 영국이 COP26 의장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수낵 전 총리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계속된 비판에 수낵 전 총리는 결국 마음을 바꿔 COP2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극우정당이던 독일대안당은 11%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은 11.9%를 득표했고 독일대안당은 15.9%를 얻었다. 녹색당은 득표율이 떨어졌지만 독일대안당은 4.9%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 독일 시민들의 관심사가 기후변화 및 환경보호에서 사회보장과 이민자 이슈 등 먹고사는 문제로 옮겨간 탓이었다.
미국 대선에선 기후변화를 ‘사기극’이라 주장하는 트럼프 당선인과 기후변화 대응 등 진보적 입장을 유지한 해리스 부통령의 정책 차이가 극명했다. 여기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석유 시추를 늘리자며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친 트럼프 당선인이었다. 인플레이션에 지친 국민은 세금을 깎아주고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며 ‘경제 해결사’를 자처한 공화당에 표를 던졌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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