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는 데 15년 걸린 한옥호텔, 뭐가 다를까

김지영 기자 2024. 10. 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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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고재 하회' 이달 말 정식 오픈
문화재보호구역 내 호텔 위치
하회마을처럼 호텔 객실 배치
목수까지 직접 양성해 건축
"자연에서 진정한 한옥 경험"
이달 말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는 경북 안동에 위치한 락고재 하회의 로비동.
[서울경제]

완공하는 데 15년이나 걸린 한옥호텔 '락고재 하회'가 이달 말 정식 오픈한다. 전통 방식대로 지을 목수가 없어 목수학교까지 만들어 교육시킨 끝에 완성된 호텔이다. 락고재는 호텔 부지에 들어간 조경부터 방 안을 장식하고 있는 도기까지 고려하면 평생 준비한 결과물임을 내세우고 있다. 현대식 한옥부터 1박에 1000만 원대를 호가하는 고급 한옥호텔까지 한옥 숙소가 급증하는 가운데 '찐' 한옥호텔을 선보이겠다는 방침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락고재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 초입에 20동 22실 규모의 '락고재 하회'를 이달 말 정식 오픈한다. 락고재는 2003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국내 최초 한옥 호텔을 선보였다. 인기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포토카드 촬영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락고재 하회는 가회동 호텔에 이어 두 번째로 공사를 시작했지만 이제야 오픈을 앞두고 있다. 15년의 시간과 정성·노하우가 락고재 하회에 모두 축약된 셈이다. 안영환 락고재 회장은 "경북 안동에서 한옥 호텔을 짓는 데 15년이 걸렸지만 사실 준비 기간까지 따지면 그 이상의 세월이라고 봐야 한다"며 "소나무와 고미술품을 천천히 모으면서 준비한 평생 작업"이라고 말했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의 슈페리어룸. 객실에서 붓받침대(필가) 모양의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
락고재 하회, 안동이라 다르다

락고재 하회는 안동 하회마을 초입에 1만 6529㎥(5000평) 규모 22동 20객실로 조성됐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존재하는 호텔이다. 락고재 측은 “15년 전에는 문화재보호구역의 기준이 하회마을 안쪽이어서 지금의 부지를 사 호텔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며 “이후 문화재보호구역이 점점 넓어지면서 호텔도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전통 유교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을 코앞에 둔 덕에 락고재 하회 역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관리를 받아야 했다. 한옥 객실을 하회마을과 동일하게 배치한 게 대표적이다. 가장 먼 객실은 락고재 하회의 로비동에서 150m가량 떨어졌다. 수도권의 다른 한옥 호텔들이 회랑(지붕이 있는 복도)을 중심으로 좌우로 객실을 배치한 것과 대조적이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의 객실 침대 위에 고미술 작품이 걸려 있다.

락고재 하회는 외관과 전경 외에도 객실마다 전통의 의미를 담아 설계된 게 특징이다. 신혼부부를 겨냥한 ‘부용정’ 객실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두꺼비와 거북이 석상을 배치했다. VIP동은 창덕궁의 후원 낙선재와 연경당을 본떠 지은 곳으로 대문에는 전주 이씨의 열녀문이 걸려 있다.

객실 내부에는 도기·백자·청자 등 고미술품이 가득하다. 슈페리어룸의 경우 12~13세기 고려청자, 14세기 고려흑유가 방을 장식하고 있다. 화장실 비누받침대는 19세기 제기(祭器)를 활용했다. 투숙객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로 직행하기보다 방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한옥의 정교함, ‘여기’ 보면 안다

올해 전국에 한옥체험업으로 등록된 곳은 2754곳으로 2019년에 비해 56% 증가했다. 실제 등록된 업소들의 면면을 보면 이름만 '한옥'인 곳들도 많다. 락고재는 가장 전통적이면서 고급스러운 한옥의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의 객실 내 투숙객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달항아리와 상이 놓여 있다.

실제로 이 같은 정교함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게 지붕이다. 한옥에서 ‘팔작(八作)지붕’이란 지붕면이 앞뒤에만 있어 ‘시옷(ㅅ) 자’ 모양인 맞배지붕의 양옆에 또 다른 지붕이 달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여덟팔(八) 자’ 모양으로 보이는 지붕을 말한다. 팔작지붕의 모서리 부분은 서까래가 부챗살로 펼쳐지게 거는 ‘선자서까래’ 방식을 쓴다. 무거운 서까래를 스무 번 넘게 올리고 내리면서 각도를 맞춰 깎은 끝에 완성된다. 전통 한옥 지붕 중에서도 품이 많이 들어가는 지붕에 속한다. 락고재 하회에 팔작지붕을 쓴 한옥들은 모두 이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안 회장이 “(이곳은) 한옥을 흉내만 내는 다른 호텔과 차원이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옥 지을 목수 인력이 부족해 안 회장이 직접 안동에 목수학교를 설립한 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학교에서 한옥을 가르치고 나니 실습할 데가 없어 이 호텔로 실습해보라고 했다”며 “처음 배운 사람이 짓다 보니 일반 목수보다 시간은 3배 더 걸렸지만 초짜들이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일반 목수보다 더 정교하게 한옥을 지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의 객실 앞에 석상들이 설치돼 있다.

락고재 하회는 올 4월부터 가오픈해 투숙객을 맞고 있다. 가오픈 기간 투숙객의 절반가량이 외국인인 데다가 국적별로는 프랑스 관광객이 제일 많았다. 전통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려는 내·외국인의 수요가 정식 오픈 전부터 입증된 것이다. 안 회장은 “한국 문화의 본질은 풍류에 있는데 풍류의 본질은 자연이고 자연을 가장 만끽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한옥”이라며 “서울에서는 어렵지만 안동에서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한옥에서 쉬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영 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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