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정서 뚫고 스타워즈마저 제친 중국 손오공…문화 침투 시작되나 [스프]

김종원 기자 2024. 9. 1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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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빡!종원]
 

귀에 빡 박히는 이슈 맛집 '귀에 빡!종원'. SBS 최고의 스토리텔러 김종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영화 스타워즈는 유독 한국에서는 흥행이 저조하지만 미국인들에게 영화 그 이상이다. 미국의 건국 철학이란 평가까지 받는 스타워즈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광팬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문화계의 초거대 IP이다. 자연스레 스타워즈 관련 문화상품도 쏟아져 나오는데 게임도 빠질 수 없다.
지난 8월 말, 이 스타워즈를 배경으로 한 신작 게임이 또 하나 출시됐다. 스타워즈 기반인 만큼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끈 '스타워즈 아웃로'라는 게임이다. 그런데, 미국의 8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다운로드 순위를 집계해 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타워즈 게임이 1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1위는 놀랍게도 서유기의 손오공을 모티브로 만든 중국 게임 '검은신화: 오공'이었다. 미국인들이 서유기를 알 리 없고, 게임 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원숭이이고, 특히 미중 갈등으로 반중 정서가 높은데도, 중국산 게임인 오공이 큰 히트를 친 것 자체가 엄청난 화제가 됐다.

발매 2주 만에 1,800만 장 판매... 중국 게임 파워

PC와 소니의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5로 발매된 오공은 발매 2주 만에 전 세계에서 1,800만 장을 팔아치웠다. 일각에선 중국 내 판매가 85% 정도 되는 만큼 별 의미가 없는 판매량이란 얘기도 나오지만, 외신과 증권가 등 전문가의 분석은 다르다. 블룸버그는 최근 오공에 대한 기사에서 전 세계 판매량이 머지않아 3,000만 장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쯤 되면 중국 내 판매량이 8할이라 하더라도 중국 이외 지역에서의 판매량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에 해당하는 트리플A 게임의 경우 전 세계 판매량 500만 장이 성공의 기준인데, 중국을 빼고도 이 정도 수치가 나온다면 누가 보더라도 명실상부 전 세계적 초대박이 맞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이 게임 산업에 진심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의 IT 대기업 텐센트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도 채택된 '리그오브레전드(LoL)' 개발사를 인수하는 등 전 세계 게임사를 막강한 자본력으로 인수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이미 미국과 견줄 게임 강대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번 오공의 대성공에 놀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우리나라 게임계에서 '참담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왜일까?

한국 게임을 뛰어넘은 중국의 개발력

게임 불모지였던 중국에 게임 산업이란 걸 전파한 건 한국이다. 2020년 미르의 전설, 포트리스 같은 게임들이 중국에 처음 진출했고, PC 게임 시장을 열었다. 이 당시 중국에서 한국 게임의 위상은 대단했다. 게임 산업이 없던 중국은 한국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고 이때 게임의 경제적 가치를 알게 됐다. 이후 한국 게임을 서비스하던 회사들이 게임을 통째로 복제한 듯한 게임들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우리 게임사들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품질에서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4년 즈음부터 중국 정부가 나서 자국 게임 산업을 키우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한국 게임에 대한 견제가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예전만 못할 뿐, 여전히 중국은 한국 게임계의 캐시카우였다. 하지만 2016년 사드 사태가 터지고서부터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 무렵 중국 정부는 과열 양상을 보이는 중국 게임계 성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게임 발매 허가증인 '판호' 발급을 대폭 줄인다. 정부의 허가가 나지 않아 게임을 만들어 놓고도 판매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때 중국은 자국 개발사와 외국 개발사 모두에게 판호 발급을 확 줄였는데, 딱 이 시기와 맞물려 한국에선 사드 사태가 터지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한국 게임에게는 판호를 아예 단 한 건도 내주지 않게 된다. 중국으로의 진출이 완전히 막힌 셈이다. 이때부터 한국 게임사들은 중국에 재진출하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렇게 4년 후인 2020년 12월, 드디어 중국 정부가 우리나라 게임사에 다시 판호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토록 기다리던 중국 게임 판호를 받고도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중국 진출을 서두르지 않았다. 왜일까?

판호가 나오지 않던 시기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극악한 형태의 확률형 뽑기 아이템 판매에 열을 올렸다. 우리나라는 확률 공개의 의무도 없었을 뿐더러, 이를 사주는 이른바 '헤비 유저'들이 있다 보니 게임사의 이런 마케팅이 통한 것이다. 이런 식의 확률형 뽑기 아이템은 2015년 NC소프트의 리니지 때부터 처음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NC소프트는 리니지 전성기 시절 하루 최대 25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당시 전 세계 게임사는 NC소프트의 매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특히 한국 게임사들은 너도나도 NC소프트의 리니지와 비슷한 과금 모델을 지닌 게임을 개발하는 데 회사의 역량을 집중했다. 이른바 '양산형 리니지 라이크' 게임의 범람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 게임 진출이 금지돼 있던 2017년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의무화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 공개된 확률이 맞는지 사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까지 마련하도록 했다. 소비자 등골을 빼먹는다는 평을 듣던 한국 게임사들의 극악한 확률형 아이템 모델로는 중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거기다 2020년, 중국이 판호를 내주기 몇 달 전 그 유명한 '원신'이라는 게임이 발매되었다. 원신 역시 사람들에게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형태의 게임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개발되는 양산형 게임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NC소프트 리니지에서 시작된 한국의 모바일 게임들은 대부분 플레이어 간의 경쟁이 주요 콘텐츠이다. 사람과 사람이 게임 안에서 서로 싸우는데, 이때 누가 더 많은 돈을 써서 더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즉, 플레이어가 딱히 내 캐릭터를 조종하는 이른바 '컨트롤'을 할 여지도 거의 없고,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는 유인은 유저들끼리의 '경쟁심'이 전부이다 보니 스토리나 음악, 연출, 캐릭터성 같은 것에 신경을 쓸 여지도 적다. 게다가 이런 리니지를 모방한 양산형 게임들이 범람하다 보니, 한국 게임사들은 문화상품으로서의 게임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더 돈을 쓰게 만들 것이냐인 '비즈니스 모델(BM)'만 개발한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하지만 중국이 내놓은 모바일 게임인 원신은 이러한 경쟁 요소가 없다. 플레이어가 혼자 게임을 즐기며 게임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게임 속 AI들과 교감한다. 소비자가 플레이어와 게임 그 자체에 매력을 느껴 기꺼이 지갑을 열도록 만드는 '싱글 플레이' 게임인데 그 게임성이 뛰어나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처럼 이미 게임 개발력 자체에서 중국에 뒤처진 상황이다 보니, 정작 중국 시장이 다시 열렸을 때 들어가서 성공을 거두기 어려워졌던 것이다. 실제로 이후 진출한 게임들은 실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새삼 '오공'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

게임은 무엇으로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PC, 모바일,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같은 게임기이다. 게임기용 게임을 '콘솔 게임'이라고 표현하는데, 오공이라는 게임은 PC와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나왔다.

게임 개발자들은 콘솔 게임이야말로 개발력의 정수라고 얘기한다. 모바일 게임은, 특히 플레이어끼리 경쟁이 주요 콘텐츠일수록, 앞서 언급한 대로 게임성에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게임기용 콘솔 게임은 얘기가 다르다. 대부분이 소파에 앉아 혼자 플레이하는 '싱글 플레이' 게임 위주인 데다가, 50만 원이 훌쩍 넘는 게임기를 산 만큼 소비자들이 게임에 거는 기대도 크다. 그러다 보니 마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듯 스토리와 영상미, 연출, 음악, 배경은 물론 그래픽 수준과 플레이 방식까지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한마디로 게임 기술의 총아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트리플A(블록버스터)급 콘솔 게임은 주로 일본과 미국·유럽의 대형 게임사들의 전유물이었다.

게다가 트리플A급 콘솔 게임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제작비는 갈수록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수익성은 끊임없이 과금을 유도하는 모바일 게임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점에서 개발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종원 기자 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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