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미생물’로 암·비만도 잡는다…정부·기업 머리 맞댄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

염현아 기자 2024. 8. 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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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질병청, 데이터 수집·인프라 사업 실시
산업계 “데이터 공유로 신약 연구 용이해질 것”
인체 내의 미생물의 유전체 해독에 따라 미생물의 역할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을 활용한 치료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4000억원 규모의 마이크로바이옴 기술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에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에 살고 있는 세균, 바이러스 등 각종 미생물 생태계를 말한다. 인간의 마이크로바이옴은 각종 영양분의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등 대사질환은 물론, 암과 뇌질환까지 연관이 깊다고 알려져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다양한 질병에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마이크로바이옴의 활용 가능성을 본 미국은 2016년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일찍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개발 사업을 국가 이니셔티브로 삼고, 미생물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 미국은 2020년 기준 총 11억8000만 달러(한화 1조5820억원)를 마이크로바이옴 기술개발에 투자했다.

◇복지부·질병청, 마이크로바이옴 임상 정보 DB 구축

우리 정부도 2021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6개 부처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을 위한 ‘국가 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를 추진해왔다. 지난 2분기에 4000억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마쳤다.

여기에 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 수집·활용을 위한 별도 사업인 ‘병원기반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개발 사업’을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 복지부는 소화기·호흡기·피부·비뇨 등 4개 분야의 병원 임상 정보 수집을 맡았고, 질병청은 검체 은행 구성을 비롯한 인프라 기반을 마련한다.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 연구에는 임상 정보, 검체, 유전체 정보 등의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러한 데이터의 공유는 물론 검체 처리와 분석 절차, 데이터 관리를 위한 표준 지침 등이 미흡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산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의 빅데이터 구축을 요구해왔다.

이에 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지난해부터 별도의 ‘병원기반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개발 사업’을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복지부는 소화기·호흡기·피부·비뇨 등 4개 분야의 병원 임상 정보 수집을 맡았고, 질병청은 검체 은행 구성을 비롯한 인프라 기반을 마련한다.

이광준 질병청 국립보건연구원 인수공통감염연구과장은 “그동안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사나 연구자들은 임상 정보나 검체 활용에 높은 장벽이 있었다”며 “정부가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이르면 내년부터 기술 개발이 용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 1월 공식 출범한 CJ제일제당의 레드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 자회사 CJ바이오사이언스. 출범식에서 기념 촬영하는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왼쪽부터), 천종식 CJ바이오사이언스 대표, 황윤일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문장./연합뉴스

◇연구 주춤했던 산업계…활기 찾을까

이러한 정부의 개발 지원 노력으로 잠시 주춤했던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에 활기를 찾을지 관심이 쏠린다. 그간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 업체들은 임상이 중단되고 기술이전 성과가 지연되는 등 연구개발(R&D)에 제동이 걸렸었다.

개발 속도가 가장 빨랐던 고바이오랩은 지난해 6월 주력 신약 후보군(파이프라인)인 궤양성대장염 치료제의 개발을 중단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임상 2a상을 진행했지만, 환자 모집의 어려움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회사는 설명했다.

고바이오랩은 최근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비만치료제로 눈을 돌렸다. 국가신약개발사업을 수주해 마이크로바이옴 균주 3종을 복합하는 비만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3종 가운데 하나인 ‘KBL983′는 체중 증가, 당뇨, 지방간 등 주요 대사질환을 제어할 수 있는 균주로, 중국, 일본, 호주, 러시아, 캐나다 등에 특허를 등록했다.

KBL983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발현을 유도하고 갈색지방의 활성을 높이는 게 특징이다. 고바이오랩은 KBL983은 GLP-1 수용체 작용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요요현상과 소화 불량 등의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특히 연구개발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CJ제일제당이 지난 2021년 7월 마이크로바이옴 업체인 천랩을 인수하면서 연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첫 임상 투약은 지난해 10월에서야 이뤄졌다. CJ바이오사이언스의 주력 파이프라인은 비소세포폐암 면역항암제 신약 후보 물질인 ‘CJRB-101′으로, 현재 국내 1·2상 임상 중이며, 3분기 안으로 미국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면역항암제인 ‘GEN-001′과 키트루다를 함께 병용하는 요법의 위암·담도암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현재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국내 한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 업체 관계자는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는 신약개발 연구에 필수적인데, 질병에 관련된 데이터는 특히 얻기 어려웠다”며 “정부에서 데이터의 인프라를 갖춰준다면 질병과 마이크로바이옴 연관성을 파악해, 신약 R&D가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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