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소 잃고 ‘티메프’ 고치기
수사 착수… 사전에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더 중요하다
인터넷에는 ‘핫딜 게시판’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식품이나 의류 같은 생필품부터 전자제품 등을 싸게 판매하는 업체 사이트를 한데 모아 둔 곳이다. 국내 유명 핫딜 게시판은 5~6개 정도 있다.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부터 쿠팡, 네이버 같은 이커머스에서 판매되는 제품 등이 주로 올라온다. 이용자 기준도 엄격해 핫딜 글이 올라오면 “2주 전에 다른 곳에서 2000원 싸게 팔았다” “항상 이 정도 가격으로 판매되는데 핫딜은 아니다” 같은 평가가 곧바로 내려진다.
그간 핫딜 게시판에서 최근 논란이 된 티몬과 위메프(티메프)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냉동 닭갈비 500g 4개 묶음을 타 사이트보다 5000원가량 싸게 파는 등 저렴한 제품이 많았다. 필자도 티메프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40여개 구매했다. 핫딜 게시판에서 ‘티메프는 어떻게 이렇게 싸게 팔 수 있나’ 같은 댓글이 달릴 때도 있었지만 큰 의심은 하지 않았다. 대부분 1만~3만원가량 생필품만 구매했고 다행히 마지막에 구매한 식품은 지난달 12일 배송됐지만 조금만 더 늦게 혹은 고액 상품을 샀다면 피해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티메프를 주로 이용했던 사람들은 생필품을 살 때 한두 푼이라도 아껴보려 했던 소비자였거나 그런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팔아보려 애쓰던 선의의 판매자였을 것이다.
믿었던 티메프에 뒤통수를 맞은 소비자와 판매자들의 분노에 검찰이 ‘해결사’로 나섰다. 특수수사를 전담하는 반부패수사1부 부장검사 등 검사 7명으로 구성된 수사팀이 꾸려졌다. 검찰은 지난 1일 티메프 본사와 두 회사의 모회사인 큐텐 등 10곳을 압수수색했다. 수사는 거침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정치적 사건처럼 저항받을 일도 없다. 야권에서 검찰청 폐지를 거론하는 상황에서 검찰은 ‘역시 수사력은 검찰’이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싶을 것이다. 많은 기업 수사의 전례를 볼 때 구영배 큐텐 대표는 검찰의 칼끝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환불 등 피해회복 조치에 적극 나서야 그나마 사법적 책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은 늘 그랬듯 티메프 사태의 원인과 자금 흐름, 경영진 책임을 낱낱이 밝혀낼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특검과 사회적 참사 조사위원회 등에서 여러 차례 조사를 거쳤지만 사고의 주요 원인과 책임은 초기 검찰 수사 결과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지고, 검찰이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 매번 반복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걸까. 검사들은 자신의 일을 ‘과거를 다루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이미 벌어진 일을 법적으로 재단하고 처벌하는 것이 검사의 일이라는 뜻이다.
티메프 사태는 어느 날 갑자기 터진 게 아니다. 이커머스 플랫폼 업체들은 무한경쟁 속에 대부분 적자 경영을 이어왔다. 판매자에게 돈을 내주는 정산주기가 길다는 문제는 온라인뿐 아니라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도마에 올랐지만 이를 규율할 법적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 금융 당국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기관이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못한 책임도 무겁지만 법적 제도를 선제적으로 마련하지 못한 국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강하게 규율하려 하면 규제 때문에 신산업이 성장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자율적으로 풀어줬다가 사고가 터지면 규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와 난감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단순히 정부 당국자들의 적극 행정에만 기댈 게 아니라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회도 정쟁에 몰두할 시간에 정산주기의 문제점을 토로하는 소상공인들 말에 더 귀를 기울여 입법에 나섰더라면 이번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국민이 직접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안에서 더 이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 대응은 없어야 한다.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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