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쪽에 서길 강요하는 '전쟁의 비극' [전쟁과 문학]

이정현 평론가 2024. 8. 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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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30편
하진 「전쟁 쓰레기」
한국전쟁 참여했던 중공군의 삶
부대가 전멸하고 포로로 전락
문신마저 투쟁 도구 삼는
친공 대 반공의 지리멸렬 갈등

전쟁사를 기록할 땐 숫자와 통계, 지도 등을 활용한다. 하지만 그 건조한 자료 속엔 개인의 고통 따윈 들어있지 않다. 전쟁 속에서 인간은 의지와 달리 '한쪽 편'에 서서 '다른 편'을 공격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어느 한쪽에 설 것을 강요받는다. 이런 상황이 어디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뿐일까. 총성 없는 전쟁, 이념 전쟁, 진영 전쟁에도 이런 쓸모 없는 강요들이 난무한다.

중국인 포로들이 타이완 송환을 선택하자 마오쩌둥은 전향 포로만큼의 국군을 사살하기 위해 금성 전투를 일으켰다.[사진=연합뉴스]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 작가 하진의 「전쟁 쓰레기(시공사ㆍ2008년)」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어느 중국군 장교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지만 당시 중국군 병사들이 모두 투철한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었다.

마오쩌둥毛澤東에게 패한 장제스의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퇴각하자 대륙에 남은 국민당 군대는 공산당에 투항했다. 국가와 군대를 운영할 고급 인력이 절실했던 공산당은 장제스 군대의 장교들을 그대로 흡수했다.

「전쟁 쓰레기」의 주인공 유안은 국민당 장제스 군대의 장교였다. 그는 마오쩌둥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았지만 홀어머니와 약혼녀의 안전을 위해 마오쩌둥의 군대에 남았다. 1951년 3월, 유안의 부대에 이동 명령이 떨어진다.

유안이 소속된 사단은 1951년 4월에 벌어진 중국군의 제5차 춘계대공세에 동원된다. 중국군은 미군의 폭격에 보급이 끊겨 패퇴했다. 유안의 부대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고, 유안을 비롯한 생존자들은 미군의 포로가 된다. 포로들은 거제도에 만들어진 수용소로 옮겨졌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또 하나의 전장戰場이었다. 1951년 4월 이후 전선은 교착됐고 1953년 7월까지 2년 동안 정전협상은 계속 결렬됐다. 협상 결렬의 주된 요인은 포로교환 문제였다. 중국과 북한은 모든 포로를 서로 맞교환하기를 원했지만, 유엔군은 포로들의 개인적인 의사에 맡기자고 주장했다.

공산군 포로 중 상당수가 송환을 바라지 않았다. 포로가 된 북한군 중 상당수는 남한 지역에서 강제 징집된 자들이었다. 국민당군 출신 중국군 포로들도 중국이 아닌 타이완으로 가길 원했다. 훗날 2만1000여명의 중국군 포로 중 1만4715명도 타이완을 선택했다.

이 사실은 한국전쟁을 제국주의에 맞선 영예로운 전쟁으로 홍보한 중국군을 당혹스럽게 했다. 마오쩌둥은 정전협정 체결을 앞둔 1953년 7월, 금성에서 최후의 공세를 가했다. 금성 전투는 마오쩌둥이 타이완을 선택한 포로의 숫자만큼 국군에게 비슷한 희생을 주기 위해 벌인 무의미한 전투였다. 정전협정 직전에 벌어진 이 전투로 중국ㆍ한국ㆍ미국의 젊은이 수만명이 숨졌다.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 작가 하진은 유안이라는 군인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통해 전쟁의 끔찍함을 일깨운다.[사진=교보문고 제공]

황푸 군관학교 출신인 유안은 포로수용소 안에서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들에게 동시에 협박을 받는다. 중국군 정치위원은 가족의 안전을 담보로 대륙으로 돌아가자고 유안을 압박했다. 반면 반공포로들은 군관학교 출신이라면 마땅히 타이완으로 가서 장제스 군대에 합류해야 한다고 유안을 설득했다.

정전협상이 지연되는 동안 포로들은 서로를 살해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등 수용소는 이념의 전장이 됐다. 반공포로들은 유안의 배에 강제로 공산주의를 비방하는 문신(fuck communism)을 새겨 넣는다. 중국으로 돌아가도 배신자로 처벌받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러자 친공포로들은 유안의 몸에 새겨진 문신의 일부를 지워 미국을 욕하는 문자(fuck…u…s)로 바꾼다. 친공 포로들은 유안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면 수용소에서 끝까지 반미 투쟁을 한 영웅이 될 거라고 격려한다. 몸에 새겨진 문신까지 사상의 투쟁 도구로 바뀌는 상황에 유안은 완전히 질려버린다. 유안은 중립국 선택을 고민하다가 약혼녀와 어머니 때문에 결국 '중국 귀환'을 선택한다.

조국으로 귀환한 유안을 기다린 것은 절망 그 자체였다. 중국 정부는 귀환한 포로들을 적에게 협조한 변절자로 규정하면서 가혹하게 탄압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그리워하다가 사망했고, 약혼녀마저 유안을 떠난다. 유안은 귀환자 수용소에서 재교육을 마친 다음 시골 학교 교사로 좌천됐다. 그곳에서 유안은 문화대혁명을 겪는다.

홍위병들은 유안을 국민당 출신의 부르주아라고 비난하면서 그를 처벌 단상에 세운다. 죽음의 위기에 몰린 유안은 군중들에게 배에 새겨진 문신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포로수용소에서 미군에게 굴복하지 않고 투쟁한 애국자라고 주장한다. 무지한 군중들은 유안을 영웅으로 추대하며 박수를 보낸다. 살아남은 유안은 글자 몇 개로 '반동'에서 '영웅'이 되는 잔혹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쓴웃음을 짓는다.

1990년대에 이르자 중국인들도 자유롭게 미국과 한국을 오가게 됐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유안의 아들은 그곳에 정착한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어린 손녀가 유안의 배에 새겨진 문신을 만지면서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손녀의 질문에 유안의 회상이 시작된다.

한 중국군 장교의 굴곡진 체험을 다룬 소설 「전쟁 쓰레기」는 우리에게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시 상기하게 만든다. 전쟁사를 기록할 때 우리는 주로 숫자와 통계ㆍ지도 등을 활용하지만, 거기에는 개인의 고통은 담겨 있지 않다. 유안의 고뇌는 「광장」의 주인공 '이명훈'의 고뇌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두 사람은 국적만 다를 뿐 비슷한 고통을 강요받았다. 천안문 사태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 하진은 이 소설로 '펜 포크너 상'을 받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하진에게 귀국금지 처분을 내렸다. 중국은 하진을 반역자로 낙인찍었고, 「전쟁 쓰레기」를 금서로 지정했다.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의 삶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다. 냉전이 만든 얄궂은 현실이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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