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지키려 기권”… ‘XY 염색체’ 복싱 선수가 부른 성별 논란
伊 여자복싱 66kg급 최강 카리니, ‘XY 염색체’ 알제리 칼리프와 대결
잇단 강펀치 맞고 46초만에 “포기”
“남자가 여자선수 꿈 박탈” 비난에 IOC “성별, 여권 기준… 문제 없어”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여자 복서 안젤라 카리니(26)는 1일 프랑스 파리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이마네 칼리프(25·알제리)와의 파리 올림픽 여자 복싱 66kg급 16강전에서 경기 시작 46초 만에 기권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이 체급 챔피언을 7번이나 차지한 카리니가 경기를 계속할 수 없었던 건 ‘성별 논란’이 있는 칼리프의 주먹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코가 부러질까 두려웠다는 그는 “남자 선수들과 훈련한 적도 있지만, 오늘 더 큰 통증을 느꼈다”고 말했다.
카리니는 경기 시작 후 30초가 지났을 때 연속으로 얼굴에 펀치를 허용해 헤드기어 턱끈이 빠졌다. 카리니는 헤드기어를 고쳐 쓰고 다시 경기에 나섰는데, 이번엔 칼리프의 강력한 오른손 스트레이트에 턱을 맞았다. 자신의 코너로 돌아간 카리니는 결국 기권했다. 카리니는 경기 후 칼리프의 악수를 거부한 뒤 링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나는 맞는 것이 두렵지 않은 전사지만 내 목숨을 지켜야 했다. 이런 경기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칼리프는 이번 대회 여자 복싱 57kg급에 출전한 린위팅(29·대만)과 함께 성별 논란이 있는 선수다. 둘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제복싱협회(IBA)로부터 실격당했다. 당시 IBA는 칼리프와 린위팅이 통상 남성이 보유한 ‘XY 염색체’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 염색체를 가진 선수가 여자부 경기에 나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칼리프와 린위팅이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던 건 IBA가 판정 비리와 부패 문제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올림픽 복싱 관장 권한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IOC는 “염색체만으로 성별을 결정할 수 없다. 이들을 성전환 선수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면서 칼리프와 린위팅의 올림픽 참가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성발달이상(DSD)을 가진 사람은 여성이면서도 XY 염색체를 가질 수 있다. 이 경우 남성과 같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보인다”고 전했다.
카리니의 조국인 이탈리아는 경기 전부터 정치권까지 나서서 칼리프의 출전을 문제 삼았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남성의 유전적 특성을 가진 선수가 여성 대회에 출전하는 건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라고 비판했고, 안드레아 아보디 이탈리아 체육부 장관은 “올림픽에선 선수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여기에 여러 유명 인사들이 칼리프와 린위팅의 올림픽 참가에 대한 견해를 밝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소설 ‘해리포터’를 쓴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은 “남자 선수를 링에 오르게 해 여자 선수의 꿈을 빼앗은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런 부당함으로 인해 파리 올림픽이 더럽혀지고 말았다”고 비난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남성은 여성 스포츠에 끼면 안 돼’라는 한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물론이죠”라는 답글을 남겼다.
성별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IOC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IOC는 2일 성명을 내고 “파리 올림픽 복싱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는 이전 대회와 같이 ‘여권’을 기준으로 성별과 나이를 정한다. 칼리프와 린위팅을 향한 학대 행위가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논란의 출발점이 된 작년 IBA의 세계선수권 실격 처분에 대해 “정당한 절차 없이 IBA 고위층이 단독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칼리프는 성별 논란으로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는 16강전을 마친 뒤 “나는 메달을 따기 위해 파리에 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모두와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알제리 올림픽위원회도 “우리는 칼리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칼리프는 4일 하모리 루처(헝가리)와 8강전을 치른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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