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 6발 모두 10점 쏜 이우석의 '그 날', 파리올림픽 금메달은 '운명'이었다

박찬준 2024. 7. 3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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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양궁 대표팀의 김우진(왼쪽부터), 이우석, 김제덕이 3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리커브 단체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꺾고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 함께 기뻐하고 있다. 한국 남자 양궁은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다. 파리(프랑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4.7.30/

[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결승전 무대에 딱 들어가는데 긴장이 안되더라. '아, 오늘 날이구나' 싶었다."

이우석(코오롱)이 올림픽 3수 끝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우진(청주시청)-이우석-김제덕(예천군청)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남자 양궁 대표팀은 30일(이하 한국시각) 프랑스 파리의 앵발리드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2024년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 결승전에서 5대1(57-57, 59-58, 59-56)로 승리했다. 한국은 2016년 리우, 2020년 도쿄에 이어 3연속 '금빛사냥'에 성공했다.

이우석의 활약이 빛났다. 이우석은 결승전에서 6발을 모두 10점으로 기록했다. 이우석은 "결승전 첫 발을 쏘려고 들어가는데 긴장이 안되더라. '아, 오늘 날이구나' 싶었다. 나는 그냥 즐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김우진과 김제덕한테 '괜찮아, 우리 것만 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어, 내가 10점 쏠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우석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한 금메달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대한민국 양궁을 이끌 '신궁'으로 꼽혔다. 인천 선인고 재학 중이던 2013년 전국체육대회에서 무려 5관왕에 올랐다. 2014년 중국 난징에서 열린 유스올림픽에선 17세 이하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운명은 묘하게 흘러갔다. 이우석은 성인 레벨에 올라선 뒤 큰 무대 앞에서 마지막 한 발을 이겨내지 못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최종 4위를 기록했다. 상위 세 명에게 주어지는 올림픽 티켓을 눈앞에서 놓쳤다. 도쿄올림픽 때도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진 대표팀에 합류했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국군체육부대 이등병 신분으로 합류했던 당시 대회에서 개인전, 단체전 모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금메달을 차지했다면 병역특례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이우석의 몫은 아니었다.

남자 양궁 대표팀(김우진, 이우석, 김제덕)이 29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리커브 단체 일본과의 8강전에서 승리했다. 이우석이 활을 쏘고 있다. 파리(프랑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4.7.29/
남자 양궁 대표팀이 3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리커브 단체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꺾고 금메달을 때 대회 3연패를 달성한 뒤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박성수 감독, 김우진, 이우석, 김제덕. 파리(프랑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4.7.30/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이우석은 다시 사선 앞에 섰다. 그는 항저우아시안게임을 거쳐 프랑스에서 에이스로 뛰었다. 생애 첫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에 한 획을 그으며 환호했다. 첫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우석은 "원래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가 못 나가서 김제덕 선수가 2관왕에 올랐다. 시기가 그랬던 것이다. 나는 파리에서 금메달을 딸 운명이었다. 좋게 생각한다"고 웃었다.

이우석은 "8강전 할 때도 긴장이 많이 안 됐다. 그런데 관중들이 소리 치기 시작하고, 두번째 엔드에서 실수를 한번 했다. 그때 확 긴장감이 오더라. 그래서 목소리도 크게하고, 김제덕 선수 따라서 화이팅도 더 외치고 그랬더니, 긴장감이 점점 사라지더라. 이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의외로 긴장감은 아시안게임이 더 컸다. 이우석은 "자카르타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안좋은 기억들을 덮고 나온 올림픽이었기에 오히려 더 홀가분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 발을 쏠때 가장 생각난 이는 어머니였다. 그는 "어머니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올림픽에 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많이 우시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했다. 이 한발로 끝내겠다고 쐈는데 잘된 것 같다"고 했다.

함께 고생한 멤버들은 제2의 가족이 됐다. 그는 "어떻게 보면 함께 해온 팀원이자 진짜 가족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를 했고 선수들이 한 팀이 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연습을 함께 했다. 그렇기에 가족 같은 사이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가족같은 멤버들과 이제 개인전서 외나무 승부를 펼쳐야 한다. 특히 김우진과는 4강에서 만날 수 있다. 이우석은 "2관왕하면 좋겠다. 근데 공교롭게도 3관왕을 준비하는 김우진과 같은 조더라. 나는 봐주는거 없다. 김우진과 열심히 올라가서 4강에서 만나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표팀의 임동현 코치가 가장 오래 대표 선수 생활을 하신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코치님의 18년 대표 기록을 깰거라고 이야기했고, 코치님도 깨보라고 하시더라. 올림픽 금메달의 목표를 이뤘기에, 이제 다음 목표는 최장수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파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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