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위기의 중앙은행
신흥국 ‘금리 내려라’, 수장 경질까지
국내 당정대 조기 인하 대놓고 압박
독립성 훼손 땐 인플레 재앙 못 피해
“한국은행은 정부에 독립적이지만 미 연준으로부터는 그렇지 않다.” 2년 전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 후 한 발언이다. 과거 남대문출장소로 불릴 정도로 정부가 장악했던 한은은 1997년 한은법 개정 이후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키워왔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의장이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을 쥐락펴락한다. 외풍에 취약한 한국경제와 통화정책은 연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신흥국도 중앙은행 수난이 끊이지 않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한 달 전 약 3년간 긴축기조를 이어가던 중앙은행 총재를 향해 “국가에 해를 끼친다”고 비난했다. 4∼5년 전 인도와 튀르키예에서는 총리가 중앙은행 수장을 경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국 역시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이 뜨겁다. 최근 한 달여 동안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에서 “금리는 내려갈 방향밖에 없다”(한덕수 총리),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었다”(성태윤 대통령 정책실장), “당 대표자가 되면 금리 인하 논의를 주도하겠다”(원희룡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며 선제적 금리 인하 요구가 분출했다. 민생을 보듬어야 할 정치인의 처지는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오랜 고금리 탓에 벼랑 끝에 내몰린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비명이 터져 나온 지 오래다. 지난 한 해 폐업한 사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하고 자영업자 연체액도 3월 말 기준 약 11조원이다.
이 총재도 “차선을 바꾸고 방향 전환(금리 인하)할 상황이 조성됐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섣부른 금리 인하가 화를 키울 수 있다. 수도권 집값이 들썩이고 가계대출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인 2%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환율 불안도 잦아들 기미가 없다.
아르헨티나나 튀르키예처럼 중앙은행이 정치권력에 휘둘리다가는 경제가 파탄 날 수 있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자 교훈이다. ‘전설의 인플레이션 파이터’라 불리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도 재선을 노리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닦달에 금리를 낮췄다. 물가가 다락같이 올랐고 볼커는 다시 초긴축조치를 단행하며 경제 고통을 키우는 우를 범했다. 그는 인플레 전쟁에서 이기려면 “긴축의 칼을 과감하고 크게 휘두르고 쉽게 넣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한은도 독립성에 걸맞은 충분한 실력을 갖췄는지 자성해야 한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중소기업 등 취약부문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왔다. 한은도 중소기업 자금줄에 숨통을 틔우는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운용하는데 그 한도가 작년 말 30조원으로 1년 전보다 15조원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추세와 거리가 멀고 자영업자 지원에 힘을 쏟는 정부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한은은 인플레 전쟁에서 창의적이고 복합적인 해법을 찾는 정책혁신을 보여줘야 한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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