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년 산책] 교수다운 교수가 되고 싶었다
내가 대학에 있을 때였다. 동국대학교 기독교학생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동국대학교에 처음 기독학생회가 생겼는데, 기념사업으로 강연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강연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요청이었다. 불교 대학이니까 신부나 목사를 초청하기가 어렵고 철학 교수인 내가 기독교 강연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나도 기꺼이 허락했다.
강연 날짜를 며칠 앞두고 다시 연락이 왔다. 대학에서 기독학생회 주최로 강연할 수 없게 되어 장소를 가까이 있는 침례교 예배당으로 옮겼으니 양해해 달라는 전화였다. 대학에서는 강연회 벽보를 보고 기독 학생 운동은 대학 내에서 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나에게는 학생들의 계획과 뜻이 소중했기 때문에 강연회를 교회에서 무사히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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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은 휴머니즘을 꿈꾸는 곳
교리의 울타리 넘어 진리 추구
교수들의 각오와 자세가 중요
종교와 대학의 관계 건강해야
」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독교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취재기자들이 찾아왔다. 종교의 자유가 저지되었고 동국대학의 기독교학생회 핍박이 부당하다는 질문이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연세대학에 불교학생회가 생기고 불교 지도자가 강연하게 될 때까지는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였다. 30여 년 뒤 내가 대학을 떠난 후에야 연세대학에 불교학생회가 생겼다. 지도교수를 구할 수 없었는데 종교학을 전공한 유동식 교수가 지도를 맡으면서 가능해졌다. 동국대학에 기독학생회가 수용되고 활동하는지는 모르겠다.
종교다운 종교 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이 있고 난 이후에 동국대학의 이기영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는 참 미안했다. 김 교수의 강연을 원하는 대학생들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대학 사회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강연회를 추진하게 되었다. 세계적 관심이 있는 종교의 인생관 문제이고, 그 안에 불교, 유교, 기독교가 들어 있으니까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인문학이 성숙하여야 하고, 종교는 교리의 울타리를 넘어 인간적 진리로 받아들여야 종교다운 종교가 되는 것인데…’라는 견해였다.
내가 30대 중반에 연세대학에 갈 때는 나름대로 꿈이 있었다. 서울대학은 학문과 진리를 위해서 세워졌고, 고려대학은 학문과 민족의식의 사명을 띠고 있었다. 연세대학은 학문과 진리는 물론 기독교 정신으로 세계에 참여하는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이상을 갖고 있었다. 미국 초창기 대학들이 그랬는데, 사립대학 대부분이 기독교 정신으로 미국을 통해 세계로 향하는 대학으로 성장했다.
연세대학도 그런 성장을 위해서는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 같다. 선교사의 신앙적 도움이 필요한 과정을 밟다가 교회의 정신적 협력과 영향을 받아야 했다. 내가 떠날 때쯤에야 민족과 국가를 위한 대학으로 정착되는 인상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국가와 민족의 영역을 넘어 기독교 정신으로 세계 무대에 동참하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자각과 자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
기독교 대학은 기독교 교리의 옹호자가 아니다. 인류 전체를 위한 진리의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사회가 기독교를 위해 존재한다는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독교 정신이 사회와 역사의 주역을 담당해야 한다. 서구사회 정신사를 담당해온 대학들은 신학 중심에서 인문학 중심의 대학으로 발전했고, 사회과학의 기반을 형성해 왔다. 두 가지 기능을 담당했다. 열린 사회와 미래를 창조하는 정신이다. 기독교 정신의 모체였던 신학대학은 교회와 더불어 전통을 계승하고, 대학은 기독교 정신을 원천으로 진실, 자유, 인간애의 사회와 역사적 희망을 감당해 왔다. 오늘의 자유, 민주 정신의 주체가 되어 세계와 역사의 기반을 구축했다. 사회적으로는 공존의 가치, 역사적으로는 창조적 희망을 계승하고 있다.
대학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주인인 교수들의 각오와 자세가 중요하다. 나는 기독교의 전통과 정신이 가장 휴머니즘의 꿈을 잘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수다운 교수’가 되고 싶었다. 교수다움의 기본이 기독교 정신이라고 믿었다. 아마 동국대학의 교수는 불교의 정신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교육은 자유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자유는 인간 완성을 위한 선택이다. 만일 누가 나에게 연세대학의 주인은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보다도 연세대학의 정신과 학생을 위하고 사랑하는 교수’라고 대답한다.
연대 졸업생이 아니라도 좋고, 기독교의 지도자로 알려진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진리, 자유, 인간애의 정신을 위해 대학을 위하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수라고 생각한다. 후배 교수들에게 ‘총장으로부터 존경받는 교수가 되라’고 권고한다. 총장은 누구보다도 대학을 위하는 책임자다. 그 총장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교수가 많아져야 한다. 총장은 학문적으로 존경스러운 교수들을 위하고, 교수들은 그 총장을 존경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정신이다.
총장으로부터 존경받는 교수 돼야
미국 대부분 대학에서는 그 대학 졸업생이 모교 교수가 되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대학은 아메리카를 위한 지도자를 키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끼리의 대학은 그 폐쇄성 때문에 다양성과 창조력이 떨어진다. ‘대학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라는 정신이 유지되는 동안 대학은 국민과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다. 국립대학들이 국가와 학문을 위한 대학이라면 기독교 정신의 대학이 현재까지 세계적인 대학의 위상을 지켜 온 것이 현실이다. 기독교 정신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교리를 넘어 열린 세계를 지향하면서, 인류에게 희망을 제시해 주는 인류 공동체의 진리와 가치관을 찾아야 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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