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 콜 배제·성희롱"…차별·편견 시달리는 여성 대리기사

이미령 2024. 3. 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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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 잡자 "여성 기사라 안 된다"…아예 남성 기사에게만 호출 뜨기도
8일 세계여성의날 맞아 '하루 파업'…"후배들에겐 동등한 기회 있기를"
여성 대리운전 기사 앱에 뜬 '남자기사님 전용 오더입니다' 알림 [전국대리운전 노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지난 5일 저녁 50대 여성 대리운전 기사 이은미(가명)씨의 스마트폰 대리운전호출 애플리케이션(앱) 화면에 경기 용인에서 서울 성동구로 향하는 콜(호출) 알림이 떴다.

이씨는 곧바로 콜을 잡아 고객을 연결해 달라며 대리운전업체에 전화를 걸었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죄송하지만 여성 기사님은 안 되는 콜"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익숙하지만 익숙해지지는 않는 거부에 이씨는 "아…"하고 실망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3시간여 뒤, 성남 판교에서 강남 청담동으로 가는 콜을 잡고 전화를 걸자 또 다른 대리운전업체 직원이 이번에는 "저희는 여성 기사님 안 돼요"라는 대답을 내놨다.

이씨처럼 운전 경력이 수십 년인 대리기사들조차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배차를 받지 못하는 등 대리운전 업계에 성차별적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 기사들은 '여성이 운전을 해 불안하다'는 식의 편견과 무시는 물론 성희롱·성추행 피해에도 노출돼 있지만 고용이 불안정한 탓에 문제 제기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서울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50대 여성 기사 김정희(가명)씨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씨는 "(여자라는 이유로 콜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매일같이 발생한다. 콜을 누르면 앱 화면에 '남자 기사님 전용 오더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뜨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성 기사 앱에는 울리는 콜 알람이 여성 기사들에게는 뜨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기사들이 앱을 깔면서 성별을 입력하는데, 업체에서 남성 기사에게만 콜 알람이 가게 설정한다는 것이다.

일부 법인 전용 대리운전업체는 아예 여성 기사를 고용하지 않고 있다. 실제 여성인 기자가 대리운전업체에 연락해 대리운전 기사 지원을 한다고 하자 "현재 여자 기사님은 뽑지 않고 있다"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여성의날 성평등 운동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민·노동단체에서는 일부 업체들이 고객 관리를 명목으로 일종의 '펜스룰'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펜스룰은 아내 이외의 여성과는 따로 식사하지 않는다는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서 생긴 용어로, 직장에서 성추문에 휩싸이지 않겠다며 애초에 여성을 배제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여성 기사를 상대로 한 남성 고객의 성폭력 사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성 기사 배정을 원천 차단한다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 등의 발생을 방지하고 여성 기사를 보호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 여성 기사를 배제하는 셈이다.

한철희 전국대리운전노조 조직국장은 "법인 전용 대리운전업체는 '기업 임직원들이 여성 기사를 싫어한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여성 기사들이 고객들에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며 "대리운전업체가 고객사에게 충성하려고 기업 핑계를 대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리기사들에게 이런 '배차 제한'은 소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여성 기사들은 같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남성 기사들에 비해 적은 돈을 손에 쥐거나 줄어든 소득을 메우려 자연히 근무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씨는 "그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새벽 2시 퇴근을 목표로 출근했다가도 결국 4시, 5시까지 일하게 되기도 한다"며 "오지로 가야하는 콜을 억지로 받거나 더 외곽으로 나가서 짧은 거리 콜이라도 많이 받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연합뉴스 자료사진]

차별적 시선과 성폭력도 여성 기사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일부 남성 고객은 "차가 큰데 운전할 수 있느냐", "기사님 운전 잘하시느냐" 같은 말로 운전 능력을 의심하기도 한다.

김씨는 한 남성 고객으로부터 "가면서 뽀뽀나 하고 가자"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번은 고객이 '어디를 좀 들렀다 가자'고 하기에 '화장실을 가느냐'고 물었더니 '무슨 눈치로 일을 하느냐. 오늘 하루 일당을 줄테니 구석에 가서 쉬었다 가자'고 하더라"며 "고객에게 '경찰서를 가겠습니까, 자택으로 가겠습니까?'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인 대리기사들은 자칫 대리운전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봐 쉽사리 피해 사실을 얘기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내 선에서 해결하자'는 식으로 넘어가기도 한다고도 김씨는 덧붙였다.

여성 대리기사들은 이런 상황에 문제 의식을 갖고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여성 기사들이 모인 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모임과 전국대리운전노조 등은 '여성대리기사 성차별 근절 촉구를 위한 서명을 진행해 대리기사 업체와 고용노동부 등에 전달하고 이날 하루 '여성 파업'에도 참여한다. 차별에 항의해 세계 여성의 날에 이뤄지는 파업이다.

이씨는 "지금 젊은 세대 여성들이 대리운전 시장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젊은 후배 여성 대리기사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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