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보존 사이, 다른 도시들의 닮은 고민
로버트 파우저 지음
혜화1117
도시독법
로버트 파우저 지음
혜화1117
개발 대 보존. 전 세계 도시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보존만이 반드시 선(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적 경관’만큼은 보존 쪽이 우세하지 않나 싶다. 역사적 경관이 그 자체로서도 고유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도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마다 역사를 보존하는 방식이나 동기는 다양하고 각자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일부 도시들은 국경을 달리하면서도 그 배경이 비슷한 경우도 있다.
로마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인들이 잘 알고 또 방문하고 싶어 하는 도시다. 고대 로마제국 멸망 이후엔 가톨릭교회가 로마시대의 유산을 보존하고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면서 로마의 역사적 경관을 후대에 남겨 주었다.
교토·오사카에 가까이 있는 나라는 710년부터 784년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 천황이 기거했던 수도였다. 메이지유신 당시에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천황을 중심으로 삼았던 메이지 정부는 도쿠가와 막부의 정통성을 격하하고 근대국가의 상징이자 일본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 줄 무엇이 필요했는데, 바로 나라가 적격이었다.
윌리엄즈버그와 나라 두 도시 모두 각각 일본과 미국에서 ‘우리’를 이루거나 또는 강화하는 과정에서 재탄생한 셈이다. 지금은 애국심 고취보다는 아름다운 역사 테마파크로서의 성격이 더 커졌겠지만.
세계 경제 수도 뉴욕과 독일제국 수도 베를린은 국제적 대도시이지만 한편으로는 주류 사회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간 흔적들이 잘 보존된 도시들이다.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와 브루클린하이츠,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와 쇠네베르크에서는 문화예술가와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의 동네를 지키기 위해 저항한 정신과 문화유산들이 남아 있다.
일본 히로시마와 독일 드레스덴은 2차 대전 말기 각각 원자폭탄 투하와 대대적인 공습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됐다. 두 도시는 전쟁의 잔혹함을 되새기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거나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런던, 파리, 이스탄불, 베이징, 빈 같은 제국주의 수도들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도시를 통해 구축해 왔는가를 살펴보는 장도 있다.
신라의 고도 경주, 서울의 북촌, 전주의 한옥마을 등 한국의 역사적 경관들도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존과 관련된 많은 과제도 남아 있다. 이 책은 어떤 길이 적합할지를 시사하는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파우저가 이번에 함께 펴낸 『도시독법』 개정판(초판 2019)은 그가 태어난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를 비롯해 제2의 고향 서울, 6년간 살았던 교토와 부산, 서울, 대전, 전주, 대구, 인천, 더블린, 런던, 가고시마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미국 프로비던스 등 그가 인연을 맺은 16개 도시의 역사적 배경, 도시인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본 일종의 ‘도시학’ 서적이다.
한경환 전 중앙일보 기자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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