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 대통령의 분노, 한동훈의 굴복 [아침햇발]

손원제 기자 2023. 12. 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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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를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1일(현지시각)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에 탑승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원제|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후 김건희 특검’ 주장에 대해 격노했다는 보도(뉴스1)가 지난 25일 있었다. “한동훈 전 장관이 독소조항과 시점을 제하면 (특검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기사가 유력 보수지에까지 나왔다. 그에 대해 (윤 대통령이) 대로한 것으로 안다”는 여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총선 전이든 뒤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9일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 특검 브리핑 조항이 들어가든 말든 ‘김건희 특검법’은 무조건 거부한다는 윤 대통령의 확고한 의사 표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부인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날 오후 열린 고위당정협의에선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조건부 수용도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탄절 휴일인데도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윤재옥 원내대표 등 당·정·대 수뇌부가 모여 일사불란하게 ‘특검법 거부’를 결정한 것이다. 정작 발언 당사자인 한 비대위원장은 취임 전이라는 이유로 부르지 않았다. 물론 그도 다음날 취임식에서 “총선용 악법이란 입장을 충분히 갖고 있다”며 고분고분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19일엔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고 전제라도 붙였지만, 이날은 싹 뗐다.

이런 상황이 말해주는 건 두가지다. 첫째, 윤 대통령의 ‘분노 버튼’은 김건희 여사라는 사실이다. 고대 중국 사상가인 한비자는 용(군주)의 여든한개 비늘 중 목 아래에 거꾸로 붙은 단 하나의 비늘, 곧 ‘역린’을 건드린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에 관해 직언한 사람은 모두 가차 없이 내쳐졌다. ‘격노’한 윤 대통령이 누구와 절연하고, 누구는 캠프에서 내보냈다 따위 여러 증언이 있다.

반면, 윤 대통령이 유례없는 국정 실패인 엑스포 유치전 ‘119 대 29’ 참패에 격노해 경위를 짚고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외교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은 뒤늦게 교체하나 싶더니, 막상 국정원장에 앉힌 건 국가안보실장이다. 대통령 부부 순방 외교 총책임자다. 정무적 책임이 가장 큰 김대기 비서실장은 수석비서관 전원 개편 와중에도 꿋꿋이 살려두더니, 28일에야 교체했다. 김 실장은 김 여사 의혹 관련 국회 질의에 “우리 여사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했던 인물이다. 후임엔 이관섭 정책실장을 돌려막기 했다. 이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24일 한국방송(KBS)에 나와 “특검법은 총선을 겨냥한 흠집내기 법안”이라고 했다. 권력 핵심을 이런 사람들로 계속 채우는 것과 필사적인 김 여사 방어 사이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걸까.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말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내 처 문제는 빼고’다. 심지어 정권의 안위조차도 배우자 호위에 비하면 하찮게 여기는 것 같다. 역대 여러 대통령들이 정권이 흔들리면 아들, 형제 수사를 허용해서라도 성난 민심을 달랬다. 여권에서 ‘총선 후 특검’ 주장이 나온 것도 이걸 풀지 않고선 총선 패배를 피하기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선거 민심 이반이 뻔히 보이는 길로 직진하고 있다. 권력 행사의 목적 0순위가 ‘김건희 지키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김 여사가 둘 관계의 지배력을 쥐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권력을 통해 이루고 싶은 공적 목표가 빈약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을 공공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사사로이 쓰는 권력자를 용인할 국민은 없다. 권력자의 특권·오만이야말로 현대의 주권자 국민의 역린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상황이 말해주는 두번째는 ‘한동훈의 굴복’이다. 한 위원장이 정말 ‘총선 후 특검’ 의도를 갖고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일보 등 친여 매체가 알아서 ‘희망 회로’를 돌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조차도 요령껏 활용해 민심에 부응하는 결정을 끌어내는 게 여당 비대위원장의 책임이고 능력이다. 하지만, 격노 한번에 꼬리를 내렸다. 한 방에 서열 정리가 끝났다. 출소한 조폭이 이제 한 구역의 두목 자리를 꿰찬 옛 졸개를 향해 ‘넌 영원히 내 쫄따구’라고 멸시하는, 영화 ‘초록물고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의 독단과 당정 주종관계를 바꾸라는 게 지금 여당을 향한 민심의 요구다. 누구나 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이 내놓은 첫 응답은 맹종이다. 이렇게 대통령실은 ‘우리 여사의 비서실’로, 국민의힘은 총선 승리보다 특검법 저지에 매달리는 정당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런 세력을 지지할 ‘동료 시민’은 없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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