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세계 최강 투기 본능’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6000만원을 넘어섰다. 비트코인의 연말 랠리는 내년 1월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를 승인할 것이란 전망과 내년 4월 비트코인 공급이 절반으로 주는 반감기가 도래한다는 점이 호재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1월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에서 한국 원화 결제 비율이 43%로, 달러 비율(40%)을 넘어섰다. 한국 사람들이 세계 비트코인 랠리를 이끌고 있다는 뜻이다.
▶2018년 첫 코인 광풍 때 한 투자 전문가는 “증시 박스권에 10년간 갇혀 있던 ‘세계 최강 투기 본능’의 봉인이 풀렸다”고 진단했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투기 광풍은 증시, 부동산 시장으로 옮겨갔다. 2차 전지 테마주 가격이 330년 치 이익을 모아야 달성할 수 있는 수준까지 부풀려졌다. 저위험·장기 투자 상품인 ETF가 한국에선 투기 상품으로 변질됐다. 주가 변동률의 2~3배 수익을 내는 레버리지·곱버스 ETF가 거래 상위 종목을 싹쓸이하고 있다.
▶2030세대는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로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 집값이 피크를 기록했던 2021년 서울 아파트 매수자의 42%를 2030세대가 차지했다. 불행히도 그때가 상투였다. 작년 한 해 30대 주택 소유자 중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을 판 사람이 10만6000명에 달했다. 그런데도 올해 들어 집값이 반등하자 2030세대가 75조원 빚을 내 또 집을 샀다.
▶영끌 빚투의 이면엔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수저 계급론 등 청년들의 절망이 도사리고 있다. 열심히 살아도 부모 세대와 같은 재산 형성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란 절망감이 ‘대박 꿈’을 좇게 만든다. 하지만 투기로 인생 역전 꿈을 이룰 확률은 희박하다. 가치 투자 대가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는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원금의 안전과 적절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행위는 투기”라고 경계했다.
▶요즘 병원 정신과를 찾는 2030청년 중엔 투기 중독 환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서 대박 투자 성공 사례를 접하다 보면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포모(FOMO·소외 불안감) 증후군에 사로잡힌다. 나도 성공 모델이 돼보자는 욕심에 투기에 몰두하다 패가망신의 길로 접어든다. 주식 투자에 미쳐 인생을 망칠 뻔한 젊은 정신과 전문의가 ‘살려주식시오’라는 책을 썼다. 그의 결론은 “욕망으로 물든 대뇌피질로는 절대 투자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