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이가 다 빠져버렸어” 영풍석포제련소 퇴직자의 호소

신다은 기자 2023. 12. 5. 22: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표지이야기]영풍석포제련소 퇴직자 네 명이 호소하는 “피부병·난청·치아손상” 산재
2023년 11월27일 영풍석포제련소에서 일한 이덕순(74)씨가 이야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제련소에서 일한 뒤 몸이 아파졌다는 이는 진현철씨만이 아니다. 2023년 11월27일 강원도 태백에서 만난 퇴직자 네 명은 저마다 제련소에서 일한 뒤 직업병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모두 진씨처럼 제련소에서 필터프레스 용해·여과 공정에 있었던 이들이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약 14년을 영풍석포제련소에서 일한 퇴직자 박용택(77)씨는 중금속이 녹아 있는 수증기를 오랜 기간 마신 뒤 이가 조금씩 흔들렸다고 말한다. “중성액이 담긴 탱크를 받으려고 무전기를 들고 서 있으면 (탱크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데 방진마스크(먼지 막는 마스크)를 써도 소용없어요. 그 김을 다 내가 마셔요. 만약 회사에서 방독마스크(유독가스 막는 마스크)라도 하나 주고 ‘위험하니까 이걸 받을 적에는 꼭 쓰시오’ 했으면 이가 안 망가졌을 수도 있잖아요. 어느 날 시나브로 이가 흔들리더니 뽑고 나면 또 그 옆의 이가 흔들리고. 그러더니 그냥 이가 다 빠져버렸어.” 박씨는 최근 노무사를 만나 산업재해 신청도 준비했으나 직업병과 관련 있다는 의사 소견서를 못 구해 신청을 포기했다. 같은 시기 진씨도 아랫니가 모두 빠져 임플란트를 한 상태다.

이덕순씨가 보관 중이라며 꺼내온 방진마스크. 방독마스크가 아니어서 가스를 차단하는 필터가 전혀 없다. 신다은 기자

아내는 청력 손상, 남편은 폐암으로 숨져

용해 공정에서 일한 또 다른 노동자 배아무개(69)씨도 발암물질이 녹아 있는 수증기에 대해 비슷한 진술을 했다. “그 김을 쐬고 나면 목이 콱 막히고 술 먹은 사람처럼 얼굴이 새빨개져요. 분명히 몸에 영향이 있음을 느끼죠. 방독마스크를 쓴대도 그걸 안 마시는 게 아니에요. 그것도 원래는 그냥 먼지 차단하는 방진마스크였는데, 2018년 한 직원이 가스 때문에 쓰러지고서 방독마스크로 바꿔줬죠.”

배씨는 석포제련소에서 2008년부터 14년을 일한 뒤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됐다. 그는 소음성 난청으로 산재를 신청해 근로복지공단의 기각 판정을 뒤집고 2023년 4월 1심에서 이겼다. 공단 항소로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같은 공정에서 일한 이덕순(74)씨도 소음이 심한 기계 근처에서 오래 일하다 청력이 손상됐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날도 많았다. 남편이 ‘쌀 갖다줄 테니까 그냥 회사에서 먹고 자라’고 할 정도였다.” 이씨 는 함께 일한 남편도 석포제련소에서 피부병으로 고생했다고 말한다. “우리 아저씨 양쪽 팔이 벌겋고 우둘투둘하게 뭐가 났는데 원인을 모른 채 지냈다. 퇴직하고 (돌아)가실 때까지도 팔이 안 좋았다.” 이씨 남편은 폐암으로 2022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같은 공정에서 일한 김아무개(66)씨는 어깨와 손, 팔 등에 통증을 수시로 느꼈다. 기계 안에 끼운 여과포(불순물을 여과하는 천) 60여 장을 일일이 손으로 분해해 씻어냈다는 그는 지금도 양손이 꽉 쥐어지지 않는다.

김씨는 정부기관 점검이 있을 때마다 제련소가 불리한 작업을 미리 중단했다고도 말한다. “감독기관이 왜 불시에 오지 않고 미리 온다고 다 얘기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노동부 시찰 오거나 본사 사람들 오는 날은 ‘손분해(기계 여과포를 일일이 분해해 씻어내는 작업)하지 마라’고 다 중단시킨다. 기계만 자동으로 돌아가게 해놓고 (강도 높은) 일은 안 시킨다. 그러고 끝나면 그때부턴 정신없이 밀린 일을 해야 한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엄청 깨끗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일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김씨는 원·하청 업체끼리 안전에 관해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 문제도 지적했다. “한번은 기계 옆에 새로 디딤대를 갖다놨는데 그게 오히려 사람을 더 다치게 하더라. 그래서 일부를 좀 철거해줄 수 있겠느냐고 하청에 말했더니 ‘원청이 설치한 거라 어떻게 못한다’는 답이 왔다. 내가 원청 쪽에도 연락했더니 그다음엔 그 디딤대를 전부 다 치워버렸다. 공정에 필요한 의자 몇 개는 남겨야 하는데 소통이 제대로 안 돼 답답하다.” 배씨가 “안전에 대해 건의사항을 말하면 하청 쪽에서 대답은 잘한다. ‘예, 알겠습니다’ 한다. 그러고서 시행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제련소 쪽은 “매월 1회 산업안전협의회를 통해 7개 협력업체와 안전보건 정보를 공유하고 애로·건의 사항을 청취하고, 정기 또는 수시로 현장을 순회 점검하며 협력업체를 격려하고 건의사항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영풍석포제련소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진현철(71·왼쪽)씨가 같은 직장에서 일한 박용택(77)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석포제련소 산재 기록은 무섭다

석포제련소는 그간 환경오염으로 주민과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았다. 2018년 폐수 70t을 낙동강에 불법 방류해 20일 조업정지를 당했고, 환경부의 주민건강 조사 결과 제련소 인근 주민의 카드뮴·납 농도가 국민 평균치의 두세 배에 이르렀다. 같은 해 중금속 중독 증세를 보인 노동자가 119 구급차가 아닌 회사 차로 실려 가다 숨졌고, 2019년엔 오염물질 농도 측정업체와 공모해 관련 수치를 1800여 건 조작한 사실이 적발됐다. 2021년엔 카드뮴 오염수를 낙동강 상류에 수년간 불법 방류한 행위로 과징금 281억원을 부과받았다.

퇴직자들의 주장에 대해 석포제련소 쪽은 “협력업체 근로자들 대부분이 다른 직장에서 정년 근무 후 고령에 이직해 오는 경우가 많다”며 “퇴직자 중 일부(에 대해) 소음성 난청 및 근골격계 질환 산업재해가 발생된다”고 설명했다.

또 치아부식증과 관련해선 “부식성 물질을 취급하는 공정을 운용하지만 방독마스크 착용 지역으로 관리하고 있다. 치아부식은 음식물 등 외적 요인과 역류 등 내적 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어 정확한 의료 검증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소음성 난청과 관련해선 “작업환경 소음을 측정한 결과 69~74데시벨로 보통 수준이며 연 1회 특수건강검진을 통해 난청질환 우려자를 추적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백(강원)=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