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수원 전세사기 그 청년은 왜 당했나
[9층시사국 41회 II] 수원 전세사기 그 청년은 왜 당했나
■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청년
열심히 일해 9년 동안 모은 1억 원에 은행 대출 5천만 원을 받아 빌라에 전셋집을 구한 31살 이재호 씨.
지난 9월, 이씨가 살던 집에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이씨를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웃집 세입자. 전세금을 돌려받으려는데 집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해당 빌라 전체의 주인이 같은지라 이 씨도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봤습니다.
이재호/수원전세사기 피해자
그때부터 연락이 한 번도 되지는 않고 있고 문자는 확인하는 것 같은데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그러고 있는...
그야말로 ‘잠수’를 해버린 집주인, 이후로 이씨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재호/수원 전세사기 피해자
평소 같았으면 퇴근하고 씻고 뭐 TV를 보거나 뭐 예능을 보면서 피로도 풀고 했을 텐데 이제 퇴근하면 또 피해 내용 확인하고 이야기 듣고 알아볼 내용 알아봐야 되고 매일매일 새벽까지 잠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진짜 어떻게 해야 될지 한 치 앞도 모를 정도로 막막하고
이 씨의 집주인은 최근 수원과 화성일대에 대규모 전세사기를 벌인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정씨 일가였습니다.
■ 정씨 일가와 공인중개사, 경찰 수사 중
정씨 일가는 부동산 임대 관련 법인을 18개 운영하며 50여채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세입자들과 1억원 내외의 임대차 계약을 맺고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까지 접수된 고소장만 466건, 피해액수는 7백억 원이 넘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도 한패였습니다.
중개업자들은 계약 당시 집의 등기부등본에 나와있는 근저당 액수가 건물 전체 가격에 비해서 큰 편이 아니라며 세입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공인중개사 관계자 47명도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 신종 전세사기 수법 '쪼개기 대출'
임대인과 부동산 중개업자가 작정하고 벌인 이번 전세사기에는 신종 수법이 동원됐습니다. 이른바 ‘쪼개기 대출’입니다.
건물 전체가 아닌 일부 호수들을 ‘공동담보’로 묶어서 대출을 받는 걸 ‘쪼개기 대출’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건물 전체가 아닌 일부에 대한 대출로 두세 번에 걸쳐서 대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5층 빌라가 한 층에 4호씩 있으면 20채의 집이 한 건물에 있는 셈입니다. 이 경우 1층에서 2층까지를 공동담보로 묶어서 대출을 받고, 3층에서 5층까지를 묶어서 따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101호에 대한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1층에서 2층까지의 공동담보에 대한 대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층에서 5층까지의 대출은 확인되지 않는 겁니다. 정씨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이 부분을 노렸습니다.
매매 가격이 30억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정씨 소유의 빌라가 있습니다. 이 건물 503호에 한 세입자가 계약을 하면서 받아본 등기부등본에는 근저당 7억 6천 8백만 원이 적혀있었습니다.
아래에는 공동담보 목록이라고 적혀있었지만, 부동산에서는 건물 전체에 대한 근저당이 7억원대인데 건물 전체 가격이 30억원 정도인데다, 건물주가 부자라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은 세입자는 503호 전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그 건물의 204호 등기부 등본을 보면 13억 9천만 원의 근저당이 추가로 확인됩니다.
알고보니 이 건물은 203, 301, 501, 502, 503호를 공동담보로 7억 6천 8백만원을 빌리고
추가로 201, 202, 204, 302, 303, 304, 401, 402, 404호를 공동담보로 13억 9천만 원을 빌린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전체 근저당은 21억 5천 8백만원. 공인중개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건물 가격이 30억원이라고 해도 근저당비율이 70%가 넘는, 주택으로 치면 깡통전세나 다름없는 위험한 건물이었던겁니다.
부동산 계약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이를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호수마다 모두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는 것 뿐인데, 보통은 공인중개사의 말만 믿고 계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피해자가 속출했습니다.
■ 예방책은 없나?
이같은 피해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전세보증금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험 가입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서진수 변호사
예를 들어 20억짜리 건물에 10억이 대출이고 선순위 보증금이 한 5억 정도 되면 5억이 남으니까 이 정도면 내가 보험을 들어줄게 나도 나중에 경매에 넘겨가지고 돈을 회수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해주는 건데, 지금 이 수원 건물들은 이미 선순위 대출이 사실 꽤 차 있는 상태였고 그러다 보니까 HUG(주택도시보증공사) 입장에서도 이거를 보증보험에 가입을 시켜줬다가 나중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겨서 좀 자기들이 보증금을 회수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 때문에 리스크가 있어 보이니까 가입을 받아주지 않겠다라고 해서 이제 거절되신 분들도 있고
이 때문에 HUG에서 보험을 가입해주지 않겠다고 하면 그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에도 맹점이 있는데요. 보증보험의 가입이 전세계약이 완료된 시점에서야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전세계약을 체결할 때 특약사항으로 ‘보증보험에 가입 거절시 계약 파기’라는 내용을 집어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이 마음먹고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결국 민사소송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세입자에게 불리한 상황입니다.
이러다보니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세입자들도 많습니다. 특히 이번 수원 전세사기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보증보험에 가입이 거절됐기 때문에 전체 피해자 가운데 90%이상이 보증보험에 가입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세금을 떼일 처지에 놓인 피해자가 대부분인 겁니다.
■ 전세사기에 무너진 청년들의 꿈
수원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의 청년층이었습니다. 정씨 일가가 목표로 삼은 수원 세류동은 인근 번화가인 인계동에 비해 집값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신축 빌라가 많아 깔끔한 주거환경을 선호하는 젊은 층들이 월세를 아껴 돈을 모으기 위해 전세로 들어오려는 수요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루아침에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잃은 청년층들은 결혼의 꿈도 포기하거나 미루게 됐습니다. 인터뷰에 응했던 이재호 씨는 이번 일로 모든게 물거품이 됐다고 말합니다.
이재호/수원전세사기 피해자
거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아예 준비를 못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내년 같은 경우에 결혼식이랑 신혼여행을 알아보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모든 상황이 거의 정지된 상황이라고 생각해야죠.
수원역에서는 피해자들의 피켓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원전세사기 피해자
저는 지금 전세사기를 당해서 한 2억 정도 손해를 봤어요.
2억이면 일반 직장인들이 20년 동안 진짜 열심히 일해 모으는 돈이거든요.
근데 그게 20년이 지나서 내 돈을 모으는 것도 아니고 그때가 돼서야 이제 제로 베이스가 되는 거니까 그때는 이제 제 나이는 60이거든요.
그러면 그때 가서 제가 어떤 미래를 꿈꾸고 노후 준비를 하고 그렇게 살 수 있겠어요
당장 급한 건 피해자 구제와 예방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피해자들.
거액의 빚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도 몇 백채씩 집을 사들이는 개인, 또 그들에게 수백억의 대출을 해주는 은행, 그들과 공모해 전세사기 진행을 도운 부동산업자 등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전세사기 폭탄은 계속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촬영: 조선기 최승구 장수현
영상편집: 강정희
CG : 정예나
리서처: 김보현 이정우
AD: 유화영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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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 기자 (kimk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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