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때랑 너무 달라요, 대통령님 밥 먹으며 얘기 좀 해요”
탈원전 반대하며 尹캠프 참여
김지희 원자력硏 선임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원자로 설계자로 일하고 있는 김지희(36) 선임연구원은 지난 대선 때 공공 기관 소속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야당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방송 찬조 연설로 화제가 됐다. 김 연구원은 캠프와 인수위에 합류해 젊은 연구원의 관점에서 윤 대통령에게 조언을 했다. 그런 그가 12일 본지 인터뷰에서 “정부 출범 이후 실제 정책이 캠프와 인수위에서 논의했던 것과는 굉장히 괴리가 커 당황스럽다”며 “현장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캠프 때 인사들과 함께 대통령을 만나 식사라도 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ㅡ현 정부에 가장 아쉬운 건.
“인사다. 많은 사람들이 윤 대통령이 정치적 빚이 없는 사람이란 사실 때문에 인사에 기대를 많이 했을 것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처럼 현장에서 제 목소리 내며 고군분투하는 각 분야 진짜 전문가를 발탁하길 기대했다. ‘이국종 복지부 장관’ 이런 걸 기대했는데 잘 안 보인다. 장미란 문체부 2차관 같은 인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ㅡ앞으로 정부가 달라지길 바라는 점은.
“총선과 관계 없이 정부가 국민을 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ㅡ지금 그러겠다고 민심 행보 하고 있는데, 잘 와닿지 않는 건가.
“범죄자 지목하듯 ‘너는 이권 카르텔’이라고 지적하는데 그래서 뭘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바꾸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전, 공공 부문, 노조 등 다양한 대상과 계층을 향해 문제점 지적했지만 단 한 번도 포용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잘못한 일은 수사기관이 알아서 처리하게 하고 대통령은 포용의 정치를 하시면 좋겠다. 어떤 정책이든지 다양한 이해관계 당사자들 얘기부터 충분히 듣고 난 뒤에 추진하면 좋겠다.”
R&D 카르텔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
ㅡ연구·개발(R&D) 분야 예산을 삭감하면서 과학계도 ‘카르텔’로 지목됐다.
“누가 카르텔이라는 건지 과학연구기술 업계 사람들 누구도 모른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경우 연구 사업 모두 공모를 통해 이뤄지고 예비 타당성 조사도 거친다. 그런데 갑자기 내년도 예산을 획일적으로 깎아 버렸다. 그럼 우리 같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이권 카르텔로 보는 것인지 황당했다. 개편안이라고 나온 것도 이상하다.”
ㅡ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개편안에 해외 기업 진출을 위한 IT 지원센터 건설이 R&D 예산으로 들어가 있더라. 국제협력 부분도 갑자기 늘었는데 국가연구개발 사업은 기초과학을 제외하면 국제협력, 해외 공동 연구가 어렵다. 해외 유출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하는 국가첨단전략기술은 공동 연구가 불가능하다. 공동 연구가 가능한 기술은 그냥 도입하면 되는 건데 해외 공동 연구를 왜 하는 건지, 어떻게 원하는 결과를 얻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기존에 예타 통과한 사업은 자르고 예타 거치지 않은 사업을 증액한 것들도 있다. 차라리 돈이 없어서 삭감했다, 미안하다고 했으면 상관없는데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ㅡ누가 했길래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고 생각하나.
“이걸 대통령이 했을 리는 없을 텐데, 실무자들이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묘한 의문이 생긴다. 우린 대통령의 ‘R&D 이권 카르텔’이란 표현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 전혀 알지 못한다. 캠프 출신인 제가 주변에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고 다녔다. 국민의힘에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고 캠프에 있던 사람들도 모르더라. 예산안 세부 내용이 궁금해 여러 경로로 알아봤는데 자료도 못 구했다.”
ㅡ대통령실엔 문의해봤나.
“대통령 비서실장한테 얘기를 해야 하나? 업계나 연구학회에서 얘기하는 게 위로 잘 전달이 안 된다. 마땅한 소통 채널이 없다. 지난번 김경율 회계사의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니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 때 대통령한테 문자 메시지 보내서 의견 전달했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비정상 아닌가. 과거에는 기관 간 이견이나 문제가 생길 때 공무원들이 민정수석실에 이야기하면 해결이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가서 누구한테 얘기를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ㅡ문재인 정부 때는 어땠나.
“그땐 탈원전 기조가 워낙 강해 우리 얘기를 안 들어줘서 그렇지 소통 채널은 확실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과학기술 담당 비서관 반응이 딱딱 왔다. 노조에서 이야기하면 바로 과기 비서관 만나고 그랬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어서 업계와 대통령실 간 거리가 굉장히 먼 것 같다.”
대통령실에 ‘늘공’이 많은 게 문제
ㅡ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나.
“대통령실에 늘공(직업 공무원)이 많은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경제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공공 기관 파티는 끝났다’고 했는데 공공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 중 누가 파티를 했나. 기재부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지난 정부 때는 정권의 힘이 너무 세니 관료들이 정권이 원하는 일을 밀어붙였다면, 지금 정부는 ‘늘공’들이 위로 올라가니 본인들이 몸담았던 부처와 조직의 실책은 덮고 넘어가기 바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ㅡ’늘공’ 때문에 소통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건가.
“정부 부처 출신 관료들 입장과 얘기가 그대로 대통령실 입장으로 되어버리는 상황 같다. 대통령실과 일반 국민이 느끼는 괴리가 상당하지 않나. 대통령이 그냥 옆에 있는 관료 출신 참모들이 얘기한 대로만 상황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ㅡ그래서 대통령이 요즘 참모들에게도 민생 강조하고 현장 가라고 한 것 같은데.
“관료들 현장 안 온다. 대통령이 현장 가도 어차피 (말할 사람) 다 지정해서 듣고 싶은 얘기만 하게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결국 참모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하고 싶은 얘기만 듣고 가는 상황이 되는 것 같다.”
ㅡ캠프와 인수위에도 참여한 전문가로서 보기에 정책 방향이 달라진 게 있나.
“처음 대통령 만났을 때 국가가 할 수 있는 건 국가가 하고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건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이번에 R&D 예산 보니 캠프 때 이야기한 것과는 정말 다르더라. 대통령의 기본 철학을 알고 있는 저희로서는 대통령의 철학과 반대로 흘러가는 예산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다.”
ㅡ캠프 때 함께한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인가.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정상적 채널을 통해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가 원래 이야기한 대로 정책이 잘 진행되는 건지, 달라진 부분은 왜 그런 건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ㅡ대통령을 직접 만나보니 캠프 때와 다르게 느껴진 게 있나.
“캠프 때 3번, 대통령 취임 이후 회의에서 2번, 총 5번 만났는데 소탈한 모습 그대로였다. 직접 만나 보면 그냥 좋은 아저씨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모습을 보면 뭔가 거만하고 ‘악의 수장’ 같은 이미지다.”
ㅡ캠프 때는 소통에 문제가 없었나.
“오히려 나이 든 분들 얘기엔 반박하고 젊은 사람들 얘기는 굉장히 잘 들어주셨다. 이런 부분이 대통령 취임 이후엔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다.”
☞김지희
1987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카이스트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거리에 나가 ‘원자력 바로 알리기’ 운동에 나서는 등 탈원전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서 후보 직속 ‘내일을 생각하는 청년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이후 인수위 경제2분과 실무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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