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도 선장도 바꾼 전경련…위상 제고 보다 쇄신이 먼저다 [기자수첩-산업IT]

조인영 2023. 8. 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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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22일 총회 열고 류진 내정자 새 회장 선임…'한국경제인협회'로 새출발
정권 교체 이후 내부 혁신 외쳐…과거 결별 보다는 위상 회복에 초점은 아쉬워
8개 그룹 회장단이 2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면담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3번째 '한국경제인협회' 새 수장인 류진 풍산 회장ⓒ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주 뒤면 한국경제인협회로 간판을 바꾼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정경유착' 고리 역할을 한 과거와 결별하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다. 새 수장으로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낙점됐다. 간판과 선장을 모두 교체한 전경련은 이로써 전임 회장 사임 이후 반 년 만에 정상화를 모색하게 됐다.

한 때 해체위기까지 몰렸던 전경련이 무려 7년에 걸친 혼란을 뒤늦게나마 수습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내부 혁신 결과 보다는 정권 교체 영향이 크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4대 그룹이 모두 탈퇴하며 위상과 규모 모두 쪼그라들었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주요 행사마다 '패싱' 당하며 존재감마저 미미했다.

결국 현 정부 출범 이후 '윤석열 캠프' 출신인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바통을 넘겨받으면서 가까스로 정상화 밑그림을 그리게 됐다. 전경련은 윤리경영위원회를 만들고 경제·기업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과거와 반성하고 기존 경제단체와 다른 정체성으로, 존립 이유를 증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결별'과 '혁신'으로 요약되는 존속 이유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통렬한 반성으로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고 강조했지만 현재까지 행보를 보면 꼭 그러지만은 않다. 오히려 정부·여당과 더 긴밀하고 끈끈해진 모습이다.

실제 전경련은 대통령의 방일, 방미, 방폴 경제사절단을 꾸리고 행사를 주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와는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런 행보라면 앞으로도 현 정부의 주요 경제 행사를 도맡아 할 가능성이 높다. 김 회장직무대행이 반년 전 언급한 "편안하고 익숙한 길이 아닌 가보지 않은 길"을 강조한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이라면 류진 회장이 이끌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름만 바뀐 사실상의 '전경련 버전2'가 될 공산이 크다. 류 회장은 '미국통'으로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춰 확실한 맨파워를 낼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특히 한·미 관계가 돈독해지고,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제계 입장을 대변할 적임자라는 평가다.

이런 류 회장의 능력과 인맥은 ‘쇄신’보다는 ‘위상 되찾기’ 쪽에 특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를 신임 회장으로 추대한 전경련의 속내도 그런 방향인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4대 그룹에 회원사로 참여해달라는 공문을 보냈고, 고문으로 김병준 회장직무대행 잔류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 그런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삼성, SK, 현대차, LG를 끌어들이면 전경련은 7년 만에 '재계 맏형' 자리를 회복하게 되니 이만한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이런 모습이 과거와 결별하고 현 조직을 혁신하겠다는 약속과는 멀어보이지만 말이다.

전경련이 4대 그룹을 중심으로 한 위상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대기업의 대변자 역할을 다시 맡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여러 세대의 의견을 들으며,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태어나겠다는 약속이 진정성을 발휘하려면 외형 회복 보다는 내실 변화가 급선무다. 특히 기존 경제단체와 차별화를 두려면 특정 회원사들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으로 한국 경제에 보탬이 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독보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반도체, 전기차를 중심으로 글로벌 상황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공급망 전쟁은 국가대항전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싱크탱크로서 급변하는 현실을 읽고 누구 보다 먼저 방향성을 제기할 줄 아는 역할이 요구된다. 국가 발전과 한국 경제를 위해 때로는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메세지도 전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여당과의 밀착 행보 보다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류진 회장이 이끄는 한국경제인협회는 이해관계자 보다는 국가와 국민에게 인정받는 것이 먼저다. 쇄신을 약속한 지 이제 반년이다. 새출발을 앞둔 류진 회장과 전경련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내부 혁신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과거로의 회귀'만 지향한다면 '패싱(무시)'의 아픔도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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