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보다 더 큰 문제가...재건축 하려는데 다들 손사래, 왜

정석환 기자(hwani84@mk.co.kr) 2023. 5.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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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재개발 시공사 선정
올 입찰 59곳 중 52곳 유찰
원자재값 상승에 공사비 급증
“소규모 사업은 적자 불가피”
3~4년 후 공급부족 우려 높아
서울 성동구 소재 신성연립 [정석환 기자]
최근 찾은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서울숲길은 이른 점심시간에도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젊은 층 감성을 겨냥한 식당, 커피숍, 액세서리 가게 등이 즐비했고 몇몇 식당은 손님들이 줄을 선 채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에 위치한 신성연립은 서울의 대표적인 소규모 재건축 사업지다. 1982년 지어져 40년이 넘은 신성연립은 노후화가 심한 탓에 인근 서울숲길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연립 내 부지는 금이 가 차량들은 울퉁불퉁한 땅 위에 주차를 해야 했다. 서울숲길을 찾은 방문객들이 연립 주변 도로에 아무렇지 않게 일회용 컵 등 쓰레기를 놓고 가는 일도 빈번했다.

54가구 규모 신성연립은 소규모 재건축을 통해 97가구 규모 공동주택을 세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인근에는 조합설립 현수막과 함께 건설사의 ‘조합 설립 축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사업 속도는 신통치 않다. 지난 3월 시공사 선정에 나섰지만 건설사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탓에 한 차례 유찰됐다.

이 단지는 내달 2일까지 재입찰을 받기로 했다. 최근 진행된 현장설명회에는 태영건설, 두산건설 두 곳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 정비사업지 가운데 1만 가구가 넘는 물량이 신성연립의 사례처럼 시공사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매일경제가 ‘나라장터’에 올라온 올해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소규모 재건축·가로주택) 시공사 모집 공고를 분석(개찰일 기준)한 결과 사업지의 1만4822가구 가운데 1만1497가구가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업지 수를 기준으로 하면 59개 사업지 가운데 52개 사업지가 유찰 또는 재입찰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정비사업 선정 어려움은 소규모 재건축, 가로주택사업 등 규모가 작은 정비사업지에 집중됐다. 유찰·재입찰된 사업지 52곳 가운데 소규모 재건축, 가로주택사업지는 47곳으로 90.4%에 달한다. 가구 수로는 8768가구 규모다.

정비사업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2곳 이상의 시공사가 참여하지 않으면 유찰된다. 두 차례 이상 유찰되면 조합은 단독 입찰한 시공사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서울의 한 가로주택사업 조합 관계자는 “조합도 최근 상황이 워낙 안 좋은 것을 알기 때문에 한 번에 시공사 선정을 마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는 거의 없다”며 “수의계약까지 염두에 두지만 수의계약으로도 시공사를 선정하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막막해진다”고 말했다. 다른 조합 관계자 역시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조합 역시 시공사에 사업비 인상을 제안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소규모 재건축이나 가로주택은 재개발, 재건축 사업보다 사업지 면적과 일반 분양 규모가 적다. 공사비 인상 압박이 거세진 가운데 사업 규모의 한계 때문에 시공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셈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기업이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수주에 나설 이유가 없다”며 “사업 보류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밝혔다.

시공사와 신탁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수주 관련 사업팀 주요 업무는 사업 수주보다는 시행사를 찾아 공사비 인상 문제를 ‘읍소’하는 일”이라며 “대형 사업지 수주도 매우 신중해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주택 사업 수주를 줄이고 토목·플랜트, 해외 수주 비중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중견 건설사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는 규모가 작은 사업장의 부침이 심하다”며 “소규모 사업지는 공사비 문제로 틀어지면 아예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탁사들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신탁사는 수수료를 받고 사업비를 일정 비율 부담하는 구조로 계약을 체결하는데 사업이 늘어지면 금융 비용을 신탁사가 책임지는 경우가 생긴다”며 “한정된 인원으로 사업지를 관리해야하는데 사업 종결 시점이 예정보다 늦어지면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수도권과 지방의 주택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는 올해 들어 4개 사업지·726가구 규모가 유찰 등을 이유로 시공사 선정에 실패했다. 부산은 9개 사업지가 시공사 유치에 실패하면서 1329가구가 넘는 신규 주택 건설 작업이 미뤄지고 있다.

전북 전주시 우아동 일대에서는 594가구 규모의 4개의 가로주택사업지가 시공사를 모집했지만 모두 유찰됐다.

착공이 늦어지면 결국 공급 절벽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단지 규모가 크든 적든 공사비 인상 등을 이유로 미공급 물량이 쌓이면 훗날 입주물량 감소로 이어진다”며 “부동산 관련 사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높고, 집값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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