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출입기자들, 남은 4년이 더 막막하다

강아영 기자 2023. 5. 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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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 언론 소통 물었더니]
일방적 메시지, 눈 밖에 나면 배제
예민한 질문 못 하고 다들 눈치만

“오히려 지금 더 제왕적 권력이 된 것 아닌가.”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한 경제지 기자는 지난 1년간 윤석열 정부의 언론 소통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그는 “제왕적 권력에서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용산 대통령실로 이전했는데, 소통은커녕 오히려 점점 더 불통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이럴 거면 왜 청와대를 나왔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대국민, 대언론 메시지가 너무나 일방적인 데다 기자 관리 역시 마찬가지라 솔직히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1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직후 출근길 기자들과 문답(도어스테핑)을 시도하고 약 6개월간 이를 진행했을 땐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직접 대통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출입 기자들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MBC와의 갈등 이후 일방적으로 출근길 문답이 중단되고, 대통령이 출입 기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면서 현 정부의 언론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다음날부터 약 반년 동안 진행하던 출근길 문답을 지난해 11월21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출근길 문답이 이뤄졌던 대통령실 1층 로비 역시 가벽으로 막아놨다가 이달 초 공사를 통해 진짜 '벽'으로 바꿨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한 인터넷매체 기자는 “애초 쌍방향 소통보다 일방적 소통을 원했는데, 그게 잘 안 되니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것 같다”며 “이후 대통령실의 홍보 행보를 보면서 소통보다는 일방적 메시지 전달을 원했고, 그런 차원에서 언론을 단순히 홍보 도구로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 기자실이 대통령실 건물에 들어와 있지만 청와대 춘추관에 있을 때보다 더한 고립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출근길 문답 중단 이후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대신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생중계하는 방식 등으로 국정 홍보를 갈음했다. 또 메시지 관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외신하고만 인터뷰를 진행했다. 출근길 문답이 이뤄졌던 대통령실 1층 로비 역시 가벽으로 막아놨다가 이달 초 공사를 통해 진짜 ‘벽’으로 탈바꿈시켰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한 통신사 기자는 “아예 벽을 설치하고 대리석 같은 색으로 발라버렸는데, 앞으로 도어스테핑은 하지 않을 거라는 뜻을 나타낸 걸로 보인다”며 “다른 취재 제약도 많다. 코로나19로 풀단 규모가 절반(영상 2명, 사진 2명, 취재 1명)으로 줄었는데 원 상태로 회복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취재기자가 한 명만 들어가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놓치는 게 많을 거라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1년간 언론이 비판과 감시 기능을 수행할 때에도 불편한 심기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대통령 관저 이전에 역술인 ‘천공’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한국일보와 뉴스토마토 기자들을 형사 고발한 일,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일은 대표적 사례다. 특히 지난 2일엔 KTV(한국정책방송원)가 정권 비판 보도에 영상자료를 사용했다며 뉴스토마토 등에 영상자료 사용 중단 조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일도 벌어졌다. 뉴스토마토는 “KTV가 업무협약을 맺은 언론사들 가운데 영상자료 사용을 제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KTV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라는 점에서 그간 정권을 향한 비판 보도에 불편함을 느낀 대통령실에서 KTV 조치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한 방송사 기자는 “국정을 잘 홍보해주는 언론사는 편애하고, 그렇지 않은 언론사는 출입기자 교체 요청을 해도 묵살하는 등의 일이 지난 1년간 비일비재했다”며 “이기주 기자가 교체되기 전까지 국내 풀 순번에서 MBC를 빼는 일도 있었다. 눈 밖에 난 언론사엔 그에 상응하는 압력을 가하는 상황이라 기자들도 위축이랄지, 일종의 체념이나 순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출입 기자들의 취재 활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한 지역일간지 기자는 “MBC 같은 사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민한 질문은 하지 않으려는 뭔가 이상한 트렌드가 있다”며 “겁을 먹는 정도까진 아닌데 계속 대통령실 출입하면서 쓸 기사도 많은 상황이니, 혹시나 구설에 오르면 번거롭고 또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들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이번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한했을 때도 독도 논란이 있는 일본 교과서 문제를 물어볼 법도 한데 기자회견에서 그런 질문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바깥에선 ‘권력에 불편한 질문을 하라’며 출입 기자들의 자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발언도 나오고 있다. 다만 출입 기자들의 자성만으로 위축된 취재 분위기를 타개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출입 기자들이 임기 4년이 남은 윤석열 정부에 바라는 점은 단순명료하다. 지금보다 더 자주 만나는 것, 그리고 서로 간 오해를 좀 덜어내자는 것이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청와대 시절엔 춘추관이라는 분리된 공간에 있었지만 지금은 같은 건물에 대통령과 기자들이 있지 않나”라며 “이 공간으로 옮긴 취지를 대통령실이 제대로 구현했으면 한다. 대통령과 언론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어떤 특수성을 좀 더 잘 활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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