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반도체 감산' 삼성, 연구개발 투자 늘리는 이유

한지연 기자 2023. 5. 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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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뉴스1

삼성전자가 반도체 한파로 1분기 역대급 실적 부진을 기록했지만 R&D(연구개발) 투자는 오히려 늘리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사이 업황 반등이 기대되는만큼 중장기적인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략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경쟁사들과의 격차 벌리기에 돌입했다는 시각도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장 사장은 1분기 실적발표 하루 전날인 지난달 26일 경영현황 설명회를 열고 "올해 개발에서 웨이퍼 투입을 늘려 미래 제품 경쟁력이 앞서가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D램과 낸드 가격이 너무 떨어졌다"며 "급격한 실적 악화 대응을 위해 적극적인 다운턴 대책을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4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지난달보다 19.89% 떨어져 1.45달러를 기록했다. D램 가격은 지난 1월에 전월 대비 18.10% 떨어진 후 2~3월 보합세를 보이다가 또 한번 크게 하락했다.

삼성전자 역시 수익성 하락 직격탄을 맞고 DS부문이 1분기 4조5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4년만의 적자다.

업계는 경 사장이 언급한 '다운턴 대책'에 주목했다. 보편적으로 반도체 불황에 따른 적자엔 공급업체들이 가장 먼저 감산에 돌입한다. 반도체 가격을 올리려면 공급을 줄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즉각적인 대책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부터 감산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감산에서 더 나아가 업황 반등을 위한 대책으로 중장기적 대책인 인력 확대와 웨이퍼 투입 증가 등 R&D투자 확대를 더욱 강조하고 나섰다. 김재준 메모리사업부 부사장 역시 실적발표 후 이어진 컨퍼런스콜에서 "선단제품들의 적기 개발과 품질 강화를 위해서 연구개발 투자 비중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R&D 투자 규모는 6조58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시설 투자 금액인 10조7000억원은 1분기 기준 최대 규모다. 그 가운데 대부분인 9조8000억원이 반도체 부문에 쓰였다.

경쟁사들의 추격이 심화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투자 확대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메모리반도체 업계는 1위 삼성전자와 더불어 SK하이닉스·마이크론 3강 구도인데, 세 업체 모두 D램의 최선단 공정인 1b나노 D램의 양산 시기를 두고 나란히 경쟁 중이다.

경 사장은 그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언급하며 동시에 초격차 기술력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번 설명회 때도 "다른 회사에 혁신 우위를 뺏기고 있다'는 외신 보도를 언급했고, 지난 2월엔 "좁혀지는 경쟁력 회복이 어렵다, 지금이 어쩌면 (격차를 벌릴)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규모와 자금력 등) 체력이 우위에 있는 삼성전자로선 시장 상황이 어려울 때가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벌릴 기회라고 판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투자 확대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 곧 "내부 인력들과 외부 투자자 등 대내외 관계자들에게 상황이 어려운 탓에 감산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시그널을 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삼성전자의 수익성 악화가 버티지 못할 수준"이라는 추측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있다는 셈이다.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초 무렵 업황 반등을 기대하는 전망이 우세한 것도 투자를 늘리는 이유 중 하나다. 장치산업 특성 상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정작 호황 때 물량을 맞추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모바일과 PC 등 소비자향부터 수요 회복이 시작돼 서버까지 이어질 것이라 봤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클라우드 기업들의 투자,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가시화되는 시점도 올해 하반기로 내다봤다. 앞서 SK하이닉스는 모든 공급업체들이 감산에 들어가면서 고객사들의 제품 구매 심리가 되살아나고 있다며 "하반기 준비를 위해 2분기에 구매를 해야 하는지 문의하는 고객도 나오기 시작했다"며 센티멘트(심리) 변화가 있다고 언급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3월 전세계 반도체 판매는 390억8300만달러(한화 약 52조4103억원)로 집계돼 지난 달(390억7000만달러)에 비해 0.3% 증가했다. 월별 글로벌 반도체 판매액이 전분기 대비 늘어난 것은 2022년 5월 이후 10개월만에 처음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이를 두고 "올해 하반기 글로벌 반도체 판매가 반등할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는 낙관적인 움직임"이라고 해석했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서버 업체들의 재고가 아직 높다는 의견"이라면서도 "높은 확률로 (반도체 업황) 바닥은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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