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살린다”…전투·사고 현장서 ‘내출혈’ 틀어막을 기술 개발
현재는 내출혈 잡으려면 전문 의료장비 필요
병원 이송시간 확보해 소생 가능성 증가 기대
#“세게 눌러! 더 세게!”
땅바닥에 쓰러진 채 의식이 희미해지는 한 미군 병사의 배를 동료 병사 여러 명이 자신들의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누른다. 동료들은 간이 관통되는 총상을 입은 병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지혈은 쉽지 않다. 동료들의 손, 그리고 다친 병사의 배는 온통 피범벅이다.
부상당한 병사는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총에 맞은 지 수분 만에 현장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사망하기 전, 투여받은 약은 진통제뿐이었다. 미국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의 한 장면이다.
사람이 크게 다쳤을 때에는 대개 피가 난다. 그 가운데에도 목숨을 특히 위협하는 건 ‘내출혈’이다. 내출혈이 위험한 건 몸속 어디서 피가 나는지 바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알려면 초음파와 같은 전문 장비를 갖춘 의료기관에 가야 한다. 내출혈이 발생한 곳을 찾는 데에만 사람이 다친 뒤 수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런 내출혈을 최대한 빨리 막으면 환자를 응급 헬기나 구급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사망할 가능성이 컸던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 볼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다.
출혈 크면 인체 지혈 시스템 ‘역부족’
이런 가운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최근 사람 몸에서 발생한 내출혈을 최대한 틀어막을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방식이 특이하다. 연구진이 만든 특수한 인공 물질을 주사기에 넣어 내출혈이 일어난 환자의 몸에 주입한다. 수술 같은 방법이 아니다. 연구진이 고안한 기술은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헬스케어 머티리얼스’ 최신호에 실렸다.
우리 몸은 피가 혈관 밖으로 잘 새지 않도록 하는 자연적인 시스템을 지녔다. 혈관에 구멍이 생겨 피가 나기 시작하면 혈액에 포함된 ‘혈소판’이 즉각 반응한다.
혈소판이 혈관에 생긴 파손 부위로 몰려들어 구멍을 메운다. 이때 ‘피브리노겐’이라고 부르는 몸속 물질은 혈소판들이 서로 잘 엉기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물이 흐르는 파이프에 구멍이 났을 때 긴급 보수를 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사람이 아주 많이 다쳤을 때이다. 인체의 자연적인 지혈 시스템이 총동원돼도 피를 충분히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지혈을 재빨리 하기 어려운 내출혈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런 내출혈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장소는 전투 현장이다. 폭탄은 폭발 지점 주변에 강한 압력을 일으키는데, 이때 전투 중인 병사들의 신체에 내출혈을 유발할 수 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도 내출혈이 빈번히 발생한다. 자동차의 운동 에너지가 강한 외력으로 바뀌어 운전자와 승객, 보행자의 신체를 때리기 때문이다.
혈소판 모으는 신물질 만들어
연구진은 피가 혈관 밖으로 나오는 일을 멈추게 하는 인공 물질을 개발했다. 혈액 속의 혈소판을 최대한 긁어모으는 나노 입자를 만든 것이다. 연구진이 ‘PEG-PLGA’라는 이름을 붙인 이 나노 입자의 크기는 140㎚에서 220㎚ 사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약 1000분의 1이다.
이번 나노 입자는 혈관 내 손상 부위로 이동한 혈소판 곁에 바짝 접근한다. 그리고 더 많은 혈소판을 끌어모은다. 철가루를 당기는 자석처럼 상처가 난 혈관 부위에 평소보다 더 많은 혈소판이 달라붙도록 한다.
연구진이 개발한 또 다른 인공 물질은 피브리노겐을 모방한 화합물이다. 피브리노겐은 사람 혈액 1ℓ에 약 2~3g 들어 있다. 연구진은 사람 몸속에 원래 들어 있는 피브리노겐이 고갈될 정도로 내출혈이 심할 때, 피브리노겐을 모방한 화합물을 체내에 주입해 지혈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인공 물질을 실험용 쥐에게 주사해 효과를 확인했다. 더 큰 동물을 대상으로도 향후 실험을 할 계획이다.
연구진은 MIT 공식 발표자료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몸속에 들어간 나노 입자가 내출혈을 막는 동시에 내출혈이 일어난 부위를 촬영하는 임무까지 수행하기를 바란다”며 “그렇게 되면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나 초음파 촬영 장비를 갖춘 큰 병원이 아니어도 환자의 내출혈 위치를 신속히 알아낼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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