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무역수지, 경상수지... 어떤 걸 봐야 하나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수출에 먹구름이 몰려와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역수지가 지난해 연간으로 사상 최대 적자(478억달러)를 낸 데 이어, 월별 경상수지도 지난 1월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45억1670만달러)를 기록하며 불안감이 증폭됐다.
무역수지는 국경에서 통관하는 물품의 수출과 수입액의 차이를 집계하는 지표다. 경상수지는 보다 넓은 범위로서 무역은 물론이고 서비스·투자·배당 등 다양한 대외 거래를 두루 반영한 지표다. 정부는 기록적인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경상수지 흑자 구조가 탄탄하다며 우려를 불식시키려 애썼다. 무역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돈의 흐름은 들어오는 액수가 나가는 액수보다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었던 경상수지마저 흔들리며 국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많아지자 비상등이 켜졌다. 경상수지가 갑자기 큰 폭의 적자로 돌아선 이유는 무엇인지, 매달 발표되는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중 어떤 통계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를 WEEKLY BIZ가 분석했다.
경상수지 갑자기 대규모 적자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1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폭등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과 대(對)중국 수출 감소의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반면, 경상수지는 여간해서 적자를 입지 않았다. 코로나 타격이 극심했던 2020~2021년 사이 2년 동안 월간 경상수지 적자는 2020년 4월 한 번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8월, 11월로 두 번 적자를 기록하더니 올해는 1월에 역대 월간 최대 규모 적자를 냈다.
경상수지에는 서비스·여행·배당 등 여러 종류의 수지가 포함되지만, 무역수지와 성격이 비슷한 상품수지가 경상수지 구성 비율 중 70~80%가량을 차지한다. 따라서 무역수지가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면 경상수지 흑자 역시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경상수지가 무역수지와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건 한국의 ‘관세선’을 통과하지 않는 중계 무역 실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무역수지는 국내에서 만들어 국경 밖에 내다 판 제품만 수출로 잡지만, 경상수지 내 상품수지는 범위가 더 넓다. 국내 기업의 해외 법인이 제3국에 판매한 중계무역 수출 제품도 포함된다. 이를테면 삼성전자의 베트남 공장에서 만든 휴대전화를 미국에서 판매할 경우 무역수지에는 계산되지 않지만 상품수지에는 반영된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무역수지보다는 상품수지가 전반적인 수출 상황을 더 잘 보여주는 지표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건비 상승, 해외시장 개척 필요성, 정부의 규제 강화로 국내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대거 외국으로 이전한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품수지에서 중계무역 순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0.9%에서 2021년 28%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중계무역 순수출액(238억달러)이 상품수지 흑자(151억달러) 규모를 넘어서기도 했다. 상품수지 외에도 경상수지에는 해외 기업이나 법인에 투자해 벌어들이는 배당·이자나 외국인 관광객 지출액, 국내 해운 회사가 받는 컨테이너 운임료 등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무역수지의 극심한 부진 속에서도 비교적 양호한 흐름을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1월에 45억달러대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입는 바람에 우려가 커졌다. 반도체 불황과 중국의 리오프닝 지연 등의 수출 부진 심화로 상품수지가 74억달러의 적자였기 때문이다. 수출이 무너져 상품수지 적자가 크면 다른 분야에서 돈이 유입되더라도 경상수지를 플러스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중국과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경상수지 적자는 올해 몇 차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 민낯 드러내
경상수지는 종합적인 경제 체력을 진단하기 좋은 지표다. 전문가들은 올 들어 경상수지가 크게 악화되자 “한국 경제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항목 중 여행, 지식재산권, 연구·개발(R&D) 등에서 우리나라가 만성적으로 적자에 시달리는 구조를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 수지는 10억달러, 연구·개발 수지는 4억달러가량 각각 적자가 발생했다. 코로나 족쇄가 풀리며 해외여행객이 급증해 1월 여행수지 적자가 1년 전의 3배인 14억9000만달러로 늘어난 것도 1월 경상수지 적자 폭을 키웠다.
경상수지를 들여다보면 세제 개편 등의 정책 변화를 감지할 수도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기업이 해외에서 거둔 소득에 대해 현지에서 세금을 내면 국내에서 과세하지 않도록 법인세 체계를 바꿨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배당수지는 역대 최대 흑자(53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법인들이 이중 과세를 피할 수 있게 되자 본사에 대규모 배당을 실시해 해외에서 국내로 거액을 들여보냈기 때문이다. 특히 배당수지 흑자의 90%는 삼성전자 해외 법인(48억달러)이 차지했다.
경상수지에 적자가 발생하면 경제 위기의 사전 경고등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외환 위기 전엔 1996년 1월부터 17개월 연속 경상수지 적자였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시절엔 3월을 빼곤 1~8월 적자였다. 따라서 올해 월별 경상수지 추이를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역수지가 불필요한 통계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이 국내에 생산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무역수지는 여전히 한국 제조업 경쟁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또한 관세청이 매달 1일(잠정치)과 중순 2회에 걸쳐 전월 통계치를 발표하고, 10일 간격으로도 중간 집계를 발표하기 때문에 무역수지는 실시간 수출 상황을 파악하기 용이한 측면도 있다. 이와 달리 경상수지는 계산해야 할 범위가 넓어서 집계가 다소 늦다. 경상수지는 한국은행이 월말에서 35~40일쯤 지나 발표한다. 지난 1월 경상수지를 3월 10일에 공개했던 식이다.
무역수지에서는 단순 업종이 아닌 세부 항목별 수출액 증감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예컨대 ‘IT 및 전자제품’뿐 아니라 액정 디바이스, 무선 통신 기기, 컴퓨터 주변 기기와 같은 품목별 실적을 알 수 있다. 달러 기준 수출액뿐 아니라 수출 중량을 측정해 보여주는 것도 무역수지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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