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앞두고 듣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서윤경 2023. 3. 3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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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모테트합창단, 4월 4일 롯데콘서트홀
지휘자 박치용 “음악은 말씀을 전하는 통로”
서울모테트합창단 단원이 서울 서초구 합창단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모습. 서울모테트합창단 제공

수많은 종교 음악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마태수난곡(Matthaus-Passion)’은 연주시간만 3시간을 넘어 ‘작심’하지 않으면 웬만해선 듣기 어렵다. 그럼에도 예수의 수난과 고통을 그린 마태수난곡은 부활주일을 앞둔 기독인이라면 ‘작심’하고 들어볼 만하다.

이 곡은 하마터면 우리가 듣지 못할 뻔했다. 레코딩 기술이 없던 시절의 음악은 작곡가가 생존했을 때나 연주됐다. 작곡가가 사망하면 연주되지 않게 됐고 악보마저 잃어버리면 음악 자체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마태수난곡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었다. 잠들어 있던 이 곡을 세상에 끄집어낸 건 펠릭스 멘델스존이다.

어린 시절 멘델스존은 생일이나 기념일이면 할머니에게 고서적이나 악보를 선물로 받았고 그중 하나 /가 바흐의 마태수난곡이었다. 진가를 알아본 그는 “이 작품을 세상에 끄집어내겠다”는 다짐을 했고 1829년 3월 11일 바흐 서거 이후 단 한 번도 연주된 적이 없던 마태수난곡을 지휘하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마태수난곡이 라이프치히 토마스교회에서 초연된 지 정확히 100년 뒤였다.

이 곡은 마태복음 26, 27장을 가사로 해 예수 최후의 날을 78곡의 음악으로 묘사한다. 오라토리아 스타일인 마태수난곡은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독창, 합창, 관현악이 모두 등장하지만 무대 연출이나 연기를 하지는 않는다. 합창 비중은 오페라보다 크고 합창과 아리아 사이 줄거리를 설명하는 해설자 ‘복음사가’도 등장한다. 예수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외 많은 인물이 나온다.

두 개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방대한 편성, 3시간에 걸친 긴 연주 시간과 높은 수준의 연주력을 요구하는 고난도 음악이다 보니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에서도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

서울모테트합창단(지휘 박치용)은 창단 35주년을 맞아 마스터피스 첫 번째 시리즈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다음 달 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두 개의 오케스트라, 어린이 합창단 등 세 개의 합창단, 솔리스트 6명 등 연주자만 150명이다.

민간 프로합창단인 서울모테트는 1989년 창단 이후 꾸준하게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을 받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29일 서울 서초구 합창단 연습실에서 박치용(60) 지휘자에게 마태수난곡을 들어야 할 이유를 들었다. 박 지휘자는 창단 때부터 서울모테트를 이끌면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에서 지휘자로 헌신하고 있다. 30년 넘게 지휘한 그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박 지휘자는 “‘음악은 무엇인가’부터 ‘하나님이 음악을 만드신 목적은 무엇인가'를 물었다”면서 “전문 음악인으로 기독교 문화를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음악의 본질을 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모테트합창단 박치용 지휘자가 지난 29일 서울 서초구 합창단 연습실에서 오는 4일 공연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찾은 답은 교회 안에서 음악은 단순히 여흥이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세계를 가르치고 선포하고 설득하는 도구가 바로 찬송이며 음악입니다. 역대상 6장에서 성가대가 솔로몬 성전에서 찬양한 것도 단순히 노래하는 게 아니죠. 마틴 루터가 설교 직전의 성가대 찬양을 ‘설교 음악’이라 말한 것도 이 때문이죠.”

이는 서울모테트가 코로나라는 힘겨운 시간을 버텨낸 이유가 됐다. 매년 40~50회 연주회를 열던 서울모테트는 코로나19가 닥친 2020년부터 1년 6개월여간 연주하지 못했다. 2021년 6월부터 정기연주회를 열었지만 제한된 인원만 객석에 앉을 수 있었다. 합창단원들은 투잡, 쓰리잡을 뛰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마태수난곡이 길다거나 독일어 가사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박 지휘자는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다. 독일어 어순에 맞춰 화성이 고저와 긴장감을 넣을 텐데 한국어 가사를 넣게 되면 어긋나게 된다”며 “대신 자신의 관심사와 필요에 따라 공부하고 가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각자 갖고 있는 감성과 감수성으로 만나도 좋다. 78곡 중 하나라도 좋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서울모테트합창단 단원이 서울 서초구 합창단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모습. 서울모테트합창단 제공

마태수난곡을 듣고자 하는 기독인들에게 색다른 감상법도 알려줬다. 악보 속에 숨겨진 코드 ‘톤 페인팅’이나 ‘텍스트 페인팅’으로 알려진 ‘워드 페인팅’을 찾는 것이다. 노래의 가사나 문자 의미를 음표 하나하나에 그림 그리듯 반영하는 음악 기법이다.

가령 마태수난곡에서 십자가가 가사에 나오면 음표의 모양도 십자가다.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뒤 묻힌 무덤을 이야기할 때 악보의 음표는 산소의 봉분처럼 봉긋하다.

“하나님의 말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 사랑과 역사를 아름답고 감동적인 음악을 통해서 더 깊이 새길 수 있습니다. 늘 읽어오던 고난과 수난에 대한 묵상을 놀라운 차원으로 승화시킨 걸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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