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결혼지옥’ 민원 2900건···‘상담 예능’ 선 넘은 예능

임지선 기자 2022. 12. 2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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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방송분 2900여건 민원 접수
방심위 “현재 관련 내용 검토 중”
MBC 사과 “가정과 아동 추후에도 지원할 것”
MBC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 프로그램 포스터. MBC 제공

상담과 치유가 아니라 자극적인 문제 장면만 남았다. MBC 상담 예능 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 이야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19일 방송된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 20회차와 관련해 21일까지 2900여건의 민원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심의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현재 해당부서에서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된 회차에서 <결혼지옥>은 한 재혼 가정의 사연을 다뤘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일곱살 딸이 있는 아내가 현재 남편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는 내용이었다. 남편이 아이와 누워서 놀아주다가 아이가 싫다고 의사 표현을 하는데도 ‘가짜 주사 놀이’라며 아이의 엉덩이를 찌르는 장면이 특히 문제였다. 아이는 아빠가 아닌 “삼촌”이라고 부르며 “싫어요. 놔주세요”라고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말했다. 당시 오은영 박사는 신체접촉을 두고 “친부여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고 새 아빠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넘어갔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은 ‘아이가 싫다는데도 과도한 스킨십을 한 것은 문제’ ‘상담이 아니라 아동 성추행으로 신고감’이라고 비판했다. MBC는 논란이 잇따르자 해당 회차의 다시보기 서비스를 전날 삭제했다. MBC는 이날 “부부의 문제점 분석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청자분들이 우려할 수 있는 장면이 방영되는 것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고 사과한 뒤, “제작진과 오 박사는 이 가정과 아동의 문제를 방송 이후에도 지속해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SBS ‘동상이몽’·KBS ‘안녕하세요’ 등
문제를 예능 프로그램서 가볍게 다뤄

이번 논란은 사회 문제가 될 만한 사항들을 ‘상담’이라는 포맷으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볍게 다루면서 빚어진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상담 예능 프로그램의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출연하면서 상담 내용의 진정성과 사실성은 더했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가 나오고 이를 의도적으로 편집하는 일이 잦았다. 출연진과 제작진이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은 적도 있다.

2016년 폐지된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프로그램. SBS 제공

2015년 유재석, 김구라가 진행한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이영자와 신동엽이 진행한 KBS 2TV <안녕하세요>가 대표적 예다.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선 지나치게 스킨십을 하는 아빠가 고민이라는 딸의 사연이 방송됐고, 아빠를 향한 엄청난 악플이 달렸다. ‘고민 상담’할 게 아니라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는 시청자 의견이 빗발쳤다. 한 가족이 제작진이 자극적으로 편집해 벌어진 일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졌다. 당시 걸러지지 않은 연예인 패널들의 발언도 문제가 됐다.

연예인 패널들의 상담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방송사들은 전문가들을 출연시키기 시작했다. 육아 예능에서 명성을 쌓은 오은영 소아청소년 클리닉 원장은 많은 프로그램에 ‘상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연했다.

그러나 ‘오은영 박사’라는 권위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 출연 여부와 상관 없이 사회적으로 논란있는 소재를 예능 형식으로 다루는데서 근본적인 문제가 나온다는 것이다.

가족 내 오래 쌓인 문제, 아동 폭력 문제 등은 한번의 상담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사연자와 여러번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전문가와 함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내는 과정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장기간 관찰하는 다큐멘터리 형태가 아닌 일회성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담 치유’하기는 쉽지 않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통화에서 “문제의 갈등 상황이 과연 상담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의문”이라며 “특히 지속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짧은 순간만 보여주고 빠지는 형태라면 자극적인 부분들만 소비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난 6월 쓴 경향신문 칼럼 ‘세상엔 오 박사님도 해결 못할 문제가 있다’를 게재하며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오 박사의 한계보다는 그의 전문성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게 세팅한 프로그램의 본질적 문제를 지적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며 “쓰레기통 같은 유튜브도 아닌 지상파 교양프로그램에서 자극성을 쫓아 이러고 있는데, 정말이지 결혼이 지옥이 아니라 이 세상이 지옥”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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