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는 김정희의 호(號)가 아니었다…친필 기록 발견
[앵커]
'추사체'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대학자 추사 김정희.
김정희라는 이름보다 '추사'라는 '호'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죠.
그런데 이 '추사'가 실은 '호'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김정희의 친필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김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당대 최고의 금석학자이자 다방면에서 눈부신 업적을 남긴 천재적 예술가 추사 김정희.
그 독보적인 글씨체에 '추사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김정희'라는 이름보다 '추사'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합니다.
사전에도 '추사'는 김정희의 '호'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뜻밖의 기록이 나왔습니다.
1809년 스물네 살의 김정희가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갔을 당시, 그곳 사람들과 글로 주고받은 대화 '필담'입니다.
청나라 인사가 자기소개를 청하자 이름(名)은 정희, 자(字)는 추사, 호(號)는 보담재라고 답합니다.
'추사'가 '자'라는 걸 본인이 직접 밝힌 겁니다.
[허홍범/추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그전에는 이런 기록이 전혀 없었던 겁니까?) 예. '자'라고 표현한 기록은 이것이 최초입니다. 1810년 한 1월의 상황입니다."]
'자'는 과거 성인이 되는 관례(冠禮)를 치르면 어른이 지어준 별칭.
'호'는 누구나 허물없이 부르고 쓸 수 있도록 지은 별명.
짓는 시기와 용도가 달랐습니다.
그동안 김정희의 '호'로 알았던 '추사'가 실은 '자'였음을 보여주는 이 주목할 만한 기록은 과천 추사박물관이 2020년에 구매한 방대한 분량의 필담첩을 장장 2년여에 걸쳐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확인됐습니다.
예로부터 이름을 귀하게 여긴 우리나라에선 대신 '호'를 쓰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김정희는 어째서 '추사'라는 '자'로 더 많이 알려졌을까.
[김규선/필담 번역자/선문대 교수 : "그때 추사가 자신의 '자'를 '추사'라고 했던 그것이 중국 사람들에게 보편화됐던 것 같아요. 그것이 일반화돼서 이후에도 그대로 '추사'가 김정희의 '호'처럼 사용되지 않았겠느냐 라고 저는 유추합니다."]
보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이 귀중한 자료는 과천 추사박물관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석입니다.
촬영기자:김보현 송혜성/영상편집:안영아/그래픽:이경민
김석 기자 (stone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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