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창칼럼] 교육교부금 이대론 안 돼
초·중·고교 넘치는 예산 소진 부작용
대학 지원 가로막는 칸막이도 문제
정부·국회, 교육재정 구조조정 시급
요즘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돈 쓰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600억원을 들여 중학교 신입생들에게 태블릿PC 1대씩을 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내세워 학생들에게 10만∼30만원씩 현금을 뿌린 교육청도 많다. 울산·제주 교육청처럼 2∼3차례나 지급한 곳도 있다. 멀쩡한 교실 바닥을 교체하거나, 단체로 잠옷을 구입하기도 했다. 넘치는 예산을 주체하지 못한 교육청이 학교에 돈을 쓰라고 압박하면서 벌어지는 기현상이다.
교육교부금 경직성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같은 교육 분야라도 고등교육에는 쓸 수 없도록 칸막이가 처져 있다. 초·중·고교는 예산이 남아돌지만, 대학은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실습비, 교수연구비마저 삭감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초·중등 1인당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132%로 최고 수준이다. 반대로 고등교육은 66.2%에 그친다. 고등교육 투자는 교육재정의 12.8%에 불과하다. 이대로 가면 삼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교육교부금 개편 목소리가 크지만 초·중등 교육계는 반발하고 있다. 아직도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는 주장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동생 예산을 빼앗아 형에게 주는 것”이라며 고등교육은 국세를 통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교육교부금 일부를 대학에 지원하자는 ‘고등·평생 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은 전국 교육감들의 반대에 막혀 제자리걸음이다. 재정적자 심화로 정부가 긴축재정에 나서는 상황에서 너무 이기적인 발상 아닌가. 필요한 곳에 재원이 더 가도록 조정하는 건 합리적 선택이다.
이뿐 아니다. 공교육에 투입되는 재원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정작 사교육 시장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몸집을 계속 불려 지난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총액은 23조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교육 재원이 비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닌지 묻고 싶다.
교육교부금 문제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내국세의 연동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교육교부금 총량을 경상 성장률 수준으로 늘리되 학령인구 비중 변화에 따라 가감하는 개선안을 제시했다. 교육교부금 규정을 고쳐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학들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분야 인재양성 사업도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고급 인재 육성, 연구개발 능력 향상,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선 과감한 개편이 필요하다.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 경제가 믿을 만한 구석은 예나 지금이나 교육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미래의 밑거름이 될 교육 예산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쓰여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 제도도 바꿔야 한다. 교육교부금 개편 논란이 1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교육 관련 단체의 반발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와 국회는 진정한 백년대계를 위해 관련 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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