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빙하시대] 작년 결혼 19만건 사상 최저, 집도 없는데 출산·양육 부담.."혼자 즐기며 살겠다"

윤혜인 입력 2022. 9. 17. 00:01 수정 2022. 9. 17.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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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내 몸 하나 책임지고 살기도 버거운데 결혼은 어불성설, 언감생심입니다. (최지수·27·직장인)”

“내가 번 돈을 내 마음대로 쓰고, 내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굳이 결혼해서 누군가와 돈·시간·공간을 공유할 마음이 없어요. (이정민·23·대학생)”

결혼하는 부부가 해마다 줄고 있다. 지난해 결혼은 19만건으로 1970년 집계 이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초혼연령은 지난해 남성 33.4세, 여성 31.1세로 10년 새 2년 정도 늦어졌다. 결혼을 하지 않고, 하더라도 늦게 해서 아이를 적게 갖는다. 그 결과가 지난해 0.81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이다. 43만쌍이 결혼한 1996년 신생아는 69만명이었다. 지난해에는 19만명에 그쳤다. 결혼과 출산은 비슷한 추이를 보인다. 현재 30대 미혼인구는 42.5%로 2000년(13.4%)의 3배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MZ세대 분위기가 저출산 문제로 이어진다.

결혼으로 인한 부담과 손해 크다고 느껴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청년들이 결혼을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한 속내를 듣기 위해 중앙SUNDAY는 ‘결혼 생각이 없다’고 밝힌 20여 명의 청년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의 주장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굳이’였다. 결혼을 안 하려는 이유는 달라도 모든 이들의 말에서 이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특별히 결혼을 해야 할 이유를 못 느낄뿐 더러, 결혼해서 좋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결혼으로 인한 안정감, 행복감보단 당장 잃을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장점은 추상적인 반면 결혼함으로써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담과 손해가 크다는 것이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부담’과 ‘잃을 것’은 무엇일까.

공통적으로 손꼽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지난 5월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결혼 감소 이유를 조사한 결과 ‘내 집 마련 등 결혼비용 증가’가 1위에 올랐다. ‘출산·양육에 대한 심리적 부담’은 2위, ‘결혼은 선택이라는 인식’이 3위로 뒤를 이었다. 미혼 응답자 역시 결혼을 안 한 이유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를 가장 많이 꼽았다. 예체능계 대학생 장하진(26·여)씨는 “앞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데 결혼은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전했다.

맨 손으로 시작해 같이 재산을 불려갈 생각은 할 수 없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근로소득만으로는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과는 달리 이전 세대에는 대학 졸업 후 정규직 일자리를 쉽게 가질 수 있었고, 몇 년간 열심히 일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이 많았다”며 “현재 세대는 평균적으로 이전 세대보다 소득 및 자산을 불려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양질의 일자리는 한정적이고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며 입사 시기도 점차 늦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결혼을 고려하기는 힘들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취업준비생 김영주(26·여)씨는 “예전에는 단칸방에서 시작해 아파트로 옮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며 “남녀 모두 경제력을 갖추고 결혼하는 게 당연해졌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직장인 이동선(30)씨는 특히 남성으로서 경제적 부담을 더욱 무겁게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아직은 결혼할 때 남자 쪽에서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것 같아 부담이 큰데 근로소득으로 집을 사거나 여유로운 삶을 누리기는 어렵다”며 “자금이 충분하지 않으면 결혼을 꿈꿀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당장의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을 덜고 혼자 여유롭게 살면서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담만으로는 지금의 결혼 감소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결혼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점이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 결혼을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청년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만 13세 이상 3만7750명을 대상으로 한 사회조사에서 ‘결혼은 해야 한다’에 동의한 응답자는 51.2%로 2010년(64.7%) 대비 13.5% 포인트 감소했다. 2명 중 1명은 결혼을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그럴만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밀레니얼 세대를 ‘미미미 제네레이션(Me Me Me Generation)’으로 정의했다. ‘내’가 가장 중요한 세대라는 의미다. ‘자유’가 중요한 MZ세대가 자유가 제한되는 결혼을 기피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실제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 확산’은 20대가 꼽은 두 번째 결혼 기피 사유다. 직장인 김성진(29)씨는 “요즘 골프, 낚시, 바이크 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데 결혼하면 이런 취미 생활 때문에 갈등을 빚고 이혼하는 사례가 많더라”며 “다양한 취미나 환경을 경험해보니 혼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결혼하지 말아야” 여성이 남성의 두 배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흥미로운 점은 미혼 남녀의 결혼에 대한 성별 시각차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미혼 남성은 40.8%인 반면 미혼 여성은 22.4%에 그쳤다. 반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한 미혼 여성은 10.5%로 미혼 남성(5%)의 두배를 넘었다. 어떤 점이 미혼 여성으로 하여금 더욱 더 결혼을 기피하게 만들었을까. 결혼 감소 이유 2위에 오른 ‘출산·양육에 대한 심리적 부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비단 심리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 역할 가중 등은 수많은 사례를 통해 ‘증명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김영주(26)씨가 결혼 생각이 없는 주된 이유도 ‘경력 단절’과 ‘가사·양육 부담’이다. 가까이서 지켜본 어머니의 결혼 생활이 영향을 미쳤다. 김씨의 어머니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전적으로 양육을 담당했다. 그 부담으로 직장도 그만뒀다. 재취업에 도전했지만 직장 규모도, 임금도 모두 줄었다. 명절은 물론 평소에도 ‘며느리’ ‘엄마’라는 이름으로 많은 희생과 책임을 감당했다. 김씨는 “과거에 비해 남녀가 많이 평등해졌다고 해도 아직 채용 시장에선 남성을 더 선호하고, 결혼 후 가사·양육에 있어서도 여성의 부담이 더 큰 게 사실”이라며 “눈앞에 보이는 희생은 뚜렷한데 어른들이 말하는 결혼 후 안정감, 양육의 기쁨은 너무 모호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정민(23·여)씨 역시 “일 욕심이 큰데 아이를 낳으면 경력이 단절되고, 육아를 하다보면 일할 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굳이 위험 요소를 만들고 싶지 않아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실제로 인구동태 코호트 통계에 따르면 출산 후 직업을 잃은 여성의 수는 상당하다. 이 통계는 통계청이 특정 출생 연도에 속한 인구집단이 경험한 결혼·이혼·출산 등의 변화를 분석한 자료다. 1983년생 기혼 여성 중 출산 시점에 직업을 잃은 여성은 25.2%에 달한다. 83년생 여성 4명 중 1명이 결혼할 때 가지고 있던 직업을 출산 시 잃은 것이다. 결혼할 때와 출산할 때 모두 직업이 있는 여성은 39.6%에 불과했다. 88년생 기혼 여성 역시 5명 중 1명(22.2%)이 출산과 함께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 반면 83년생 기혼 남성의 93%, 88년생 기혼 남성의 89.6%는 결혼과 출산에 관계없이 직업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가사 부담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사회조사에서 19세 이상 부부를 조사한 결과 ‘아내가 주도적으로 가사를 담당한다’고 답한 남편은 75.6%, 아내는 76.8%에 달했다. 반면 ‘남편이 주도한다’는 응답은 남편 3.7%, 아내 3%로 저조했다. 공평하게 분담하는 부부는 20%에 그쳤다.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20대(남편 43.3%, 아내 43.4%)에서 조차 아내가 주도적으로 분담하는 사례(남편 51%, 아내 52.7%)가 절반을 넘어섰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가정과 가정의 만남’으로 통용되는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도 MZ세대가 결혼을 꺼리는 원인이다. 대학생 장하진(26)씨는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이 개인과 개인 간의 만남이 아니다”라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 뒤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가족으로 묶이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장씨는 연애를 지향하지만, 다른 가족과 서류상으로 묶이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 비혼을 결심했다. 그에게 결혼은 만남의 결실이 아닌 선택일 뿐이다. 직장인 최지수(27·여)씨 역시 “단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보는 어른들과 가족이 돼야하고 챙겨야할 사람이 늘어나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족들과 가치관이 맞지 않거나, 양가 가치관·종교 등이 달라 갈등을 빚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일례로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로 살 것임을 합의해도, 그들의 선택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연적이다. 장씨 역시 “출산으로 인해 몸 상하는 것도 싫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던 부모님의 양육 방식을 답습할까 두려워 아이를 낳기 싫어 남자친구와 합의한다고 해도 손자를 원하는 가족이 한마디씩 얹을 때마다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아이 출산 연령 갈수록 높아져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결혼을 안하는 만큼 신생아도 줄어 든다. 한 여성이 일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해마다 최저치를 갱신하며 지난해 0.81명을 기록했다. 결혼한 부부들도 아이를 안 갖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 따르면 2016년 2.23명까지 늘었던 유배우 출산율은 2018년 이후 감소 추세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교수는 “결혼이 계속 줄어드는 장기 추세에, 결혼을 해도 자녀를 갖지 않는 최근 경향이 겹치면서 지난 5년 동안 출생아 수가 급락한 것”이라며 “비혼과 출산 기피의 영향을 분석해야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텐데 현재 공식 통계조차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지난 2월에야 유배우 출산율을 포함한 세부 지표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MZ세대가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도록 유도할 방법은 없을까. 무엇보다 이들의 가족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조사에서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에 동의하는 응답자는 2010년 40.5%에서 2020년 59.7%로 10년 새 급격히 증가했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문항에 동의한 응답자도 2010년 20.6%에서 2020년 30.7%로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7%가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찬성 입장을 표했다. 다양한 관계를 가족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양육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부담도 덜어줄 필요가 있다. 차우규 한국인구교육학회장(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은 “양육 책임을 전적으로 엄마에게 전가하는 가부장적 유교 문화가 남아있는 한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며 “우리 사회가 전적으로 양육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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