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애도할 수 없다".. 여왕 추모 거부하는 옛 식민지들

윤현 입력 2022. 9. 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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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2세 서거 계기로 식민 통치 분노 다시 불붙어

[윤현 기자]

 영국 식민 통치 피해 국가들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 반대 분위기를 보도하는 AP통신 갈무리.
ⓒ AP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존경받아온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에 전 세계의 추모 물결이 일고 있지만, 과거 영국의 식민 통치와 억압을 받았던 국가들에서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AP통신은 11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카리브해, 중동, 아시아 등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국가들은 여왕의 서거를 마냥 애도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이같이 전했다. 

케냐의 변호사 앨리스 무고는 여왕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나는 애도할 수 없다"라며 여왕이 통치하던 영국이 1956년 자신의 할머니를 비롯해 케냐인에게 발행한 '이동 허가서'를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1952년 여왕 즉위 후 영국은 케냐에서 독립 투쟁인 '마우마우 봉기'가 벌어지자 잔혹하게 진압했다. 당시 10만 명 이상의 케냐인이 열악한 환경의 수용소에서 고문, 성폭행 등을 당했으며 이동의 자유도 없이 영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무고는 "할머니가 영국 군인들에게 구타당하고, 할아버지를 잃고 홀로 자녀들을 키워야 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며,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썼다.

대영제국의 식민 범죄... "여왕 책임이다 vs. 아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비난해 논란이 된 우주 안야 미국 카네기 멜런대 부교수 트윗 갈무리.
ⓒ 우우 안야 교수 트위터
 
나이지리아 출신의 우주 안야 미국 카네기 멜런대 부교수는 여왕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도둑질과 강간을 일삼았던 대량 학살 제국의 최고 군주"라며 "그의 고통이 극심하기를 바란다"라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영국은 1967~1970년 나이지리아 정부군에 무기를 제공하며 내전에 개입, 독립을 주장하던 비아프라 반군을 학살하는 데 일조했다. 

트위터 측은 안야 교수의 글이 규정을 위반했다며 삭제했으나, 안야 교수는 다시 트윗을 올려 "인종 학살을 뒤에서 조종하고, 우리 가족을 갈라놓은 영국을 통치한 군주에게 경멸을 퍼붓는 것 말고 다른 것을 기대한다면 별을 보며 소원이나 빌어야 할 것"이라고 썼다. 

이에 대해 카네기 멜런대는 성명을 내고 "표현의 자유는 고등 교육의 사명이지만, 안야 교수의 견해는 우리 학교의 가치, 우리가 보호하려는 학사 과정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AP통신은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여왕의 서거 소식에 분노를 포함해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라며 "여왕은 70년간 재위하며 영국의 식민주의 유산을 대표하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영국 식민 통치의 책임을 여왕에게만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케냐의 한 시민은 "마우마우 봉기는 씁쓸한 기억이지만, 당시 여왕은 어린 여성에 불과했다"라며 "우리가 그 시기에 겪었던 모든 고통에 대해 여왕을 비난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공화국 되고 싶다"... 영연방 해체 가속화 
 
 앤티가 바부다의 공화국 전환 국민투표 계획을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 BBC
 
여왕의 서거를 계기로 영연방(Commonwealth) 해체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연방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고, 지금은 독립했으나 여전히 영국 국왕을 상징적인 국가 원수로 여기는 56개국의 연합체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 바부다의 개스턴 브라운 총리는 새로 즉위한 찰스 3세를 새로운 국왕으로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면서도 "만약 내년 선거에서 내가 재선에 성공하면 3년 안에 공화국 전환을 위한 국민투표를 하겠다"라고 공언했다.

브라운 총리는 "이는 영국에 대한 적대 행위가 아니다"라면서도 "우리가 진정한 주권 국가임을 분명히 하고, 독립의 고리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자메이마, 바하마, 벨리즈 등도 군주제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자메이카의 드루 홀니스 총리는 지난 3월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방문했을 때 공화국으로 전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또 다른 영연방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는 정부가 공화국 전환의 계획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으나, 야권을 중심으로 탈퇴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에 영국의 새로운 국왕이 된 찰스 3세는 군주제 폐지 여론이 일고 있는 카리브해, 아프리카,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강화해서 영연방 결속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여왕의 서거는 영연방 국가들이 스스로 어떤 나라가 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라며 "찰스 3세의 즉위는 21세기에도 영국 왕실이 국가 원수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재점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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