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앉는 건 좋지만 눕지는 마!".. 노숙인에겐 새침한 건축물들

2022. 8. 2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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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장애물 건축
노숙 막을 법적 효력 없는 국가서
공공장소 점유 막을 대안으로 부상
울퉁불퉁 모양 벤치·팔걸이 설치 등
눕거나 자는 행위 원천 봉쇄 역할
장식·조경 활용 미묘한 디자인부터
소화전 위 톱니 등 노골적인 방해도

몇 해 전 세계적인 사무실 공유(코워킹 스페이스) 기업이 서울역 앞에 있는 대형 건물에 사무공간을 열면서 뜻하지 않은 고민에 빠졌다. 서울역 앞 노숙인들 때문이다. 공유 사무실이라는 곳은 원래 비용을 아끼고 협업과 소통을 중시하는 스타트업이나 프리랜서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아무래도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한다. 그중에는 여성들도 많다. 그런데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서울역 앞을 매일, 그것도 밤늦게 지나다닐 경우 노숙인들 때문에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인상을 받는다는 거다.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 문제는 서울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새로운 고객들을 모아야 하는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사무실이 거기에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다녀야겠지만, 언제든 쉽게 옮길 수 있는 공유 사무실이라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그만이다.
노숙을 막는 벤치
이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최고의 테크 기업들이 모여 있고 그래서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는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일대의 노숙인 문제는 유명하다. 트위터의 본사는 샌프란시스코 시청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그만큼 시내 중심가에 있지만 평일 대낮에도 그 앞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넘쳐나는 마약중독자와 노숙인들 때문이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시청 앞 광장에 해당하는 시빅 센터 플라자(Civic Center Plaza)를 노숙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지정, 시범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일대에서 사실상 거주하고 있다. 마약에 취해 눕거나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샌프란시스코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할까? 특별한 해결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약을 파는 것은 불법이지만 마약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 인식하는 태도와 이들을 수용,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의 부족 때문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문제다. 경찰과 안전요원들이 거기에 서서 모인 수백 명의 마약중독자와 노숙인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현대의 도시는 왜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른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노숙인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가”라는 질문이다. 노숙인의 대부분은 집, 혹은 합법적인 거처가 없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홈리스(homeless)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처가 없는 것은 그들 개인에게는 비극이고 문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공공장소인 거리를 자신의 거처로 이용하는 행위는 그들에게는 ‘문제’라기보다는 문제의 해결책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노숙행위가 불법일 경우다. 하지만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구걸행위는 경범죄로 처벌할 수 있지만 노숙을 막을 마땅한 법적 근거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 이야기한 사무실 임대업체의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 건물 주변의 노숙인들은 고객을 끌어모으는 데 방해가 되는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기업들이 많이 모여들어야 세금수입이 늘어나는 시의 입장에서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시와 건물주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게 된다.
현대 도시 난제가 된 거리 노숙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다양한 공공 디자인이 등장했다. 노숙인의 공공장소 사용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애물 건축‘인데 사진은 이들의 점거를 막는 거대화분이 설치된 모습.
노숙인 입장에서는 엄연한 권리인 ‘공공장소의 사용’을 제한하는 방법이 뭘까? 바로 장애물 건축이다. 적대적 건축(hostile architecture), 배제(排除)건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방법은 거리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불편이 없지만 노숙인들이 이용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인 벤치를 보자. 과거에는 공원이나 지하철역 같은 공공장소의 벤치가 가로로 긴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요즘은 벤치 중간에 튀어나온 구조물을 박아 넣거나 아예 엉덩이 모양의 개인용 의자로 만든다.

이를 이용하는 보행자들은 이런 디자인이 그저 남과 몸이 닿지 않도록 개인의 공간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벤치를 누워서 자는 장소로 취급하는 사람들, 즉 노숙인들에게는 엄청난 장애물이다.
소화전의 톱니
이런 장애물 건축은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노골적이기도 하다. 반드시 눕지는 않아도 건물 앞에서 목적 없이 서성이거나 앉아있는 것을 막으려는 건물주들은 건물 외벽에 튀어나와 있는 소화전 위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는 구조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비둘기가 많은 곳 건물에 설치하는 ‘버드 스파이크’와 똑같은 방법을 사람에게 적용한 것이다. 이는 길을 집과 직장, 식당과 상점을 오고 가는 데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장애물이다.
영국 런던의 캠든 벤치는 개성있는 외관이 인상적이나 실상 누구도 편하게 눕지 못한다.
이런 장애물 건축은 때로는 아주 미묘해서 단순한 장식, 조경과 구분하기 힘들 때도 있다. 영국 런던에서 사용하는 ‘캠든 벤치’는 언뜻 보면 그저 개성 있게 생긴 벤치이고 조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위에 눕지 못하게 만든 것이고, 거대한 화분은 지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는 그곳에 앉아있던 노숙인을 몰아내기 위해 놓은 것이다.

전부 나름대로는 ‘묘책’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당장 내 건물 앞에서만 보이지 않게 하려는 미봉책일 뿐이다. 깊은 상처가 보기 싫어 반창고를 붙여둔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심각해지고 각 도시에서 주거 비용이 치솟는 상황을 보면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장애물 건축을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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