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윤석열정부의 시간이 시작됐다

남도영 2022. 6. 3.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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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지방선거가 국민의힘 압승으로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169석의 원내 다수당이지만, 의석수를 믿고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던 동력을 잃었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2024년 22대 총선까지 남은 1년10개월 정도가 윤석열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시간이다.

윤 대통령은 어떤 국정 운영을 선보일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과 주요 자리에 대한 인선, 취임 후 이벤트를 살펴보면 대략적인 그림이 보인다. 키워드는 관료, 수사, 동맹이다. 경제 운용의 핵심에는 관료가 있다. 과거 정부에서도 관료들은 경제정책 운용의 중심이었다. 윤석열정부에서는 비중이 훨씬 커졌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세 명 모두 경제 관료 출신이다. 경제는 관료들에게 맡기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다. 그런데 관료는 규제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창조적이라기보다는 안정적이고, 민간을 통제하려는 속성이 있다. 지난달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5년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삼성 450조원, SK 247조원, LG 106조원, 현대차 63조원, 한화 37조원 등 대기업 10여 곳이 향후 5년간 1000조원이 넘은 돈을 투자하고 수십만 명을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 결과를 보면 500대 기업 중 올해 투자계획이 없거나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비중이 절반에 달했다. 두 달 만에 천문학적인 투자가 새로 생겨난 셈이다. 누가 봐도 새 정부에 대한 대기업들의 성의 표시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풍경에는 민간 주도 성장보다는 관료 주도 성장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두 번째는 수사다. 지방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수사의 시간이다. 윤 대통령은 사정 기관을 책임지는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장관에 검찰 최측근인 한동훈 장관과 충암고·서울법대 후배인 이상민 장관을 임명했다. 법무부는 검찰을, 행안부는 경찰을 관리한다. 문재인정부 시절 ‘검찰개혁’ 영향으로 검찰의 수사 권한이 축소되고 경찰의 권한이 커졌다. 막강해진 경찰을 컨트롤하는 책임이 이 장관에게 맡겨졌다. 이 장관은 윤석열정부 인재풀로 불리는 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출신이다. 민주당의 표적이 된 한 장관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히 움직이는 이 장관의 역할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으로 1년간 많은 수사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대형 수사는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가장 익숙한 분야다. 세 번째 키워드는 한·미동맹이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화끈했다. 거칠게 말하면 북한 변수, 중국 변수에도 불구하고 미국 손을 번쩍 들어줬다. 윤 대통령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인 모호성을 유지하는 외교정책을 폐기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4시간 만에 대응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동맹 강화는 필연적으로 일본과의 관계개선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인수위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을 때,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말했을 때, 윤석열정부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집권 5년을 관통하는 핵심 슬로건을 잘 모르겠다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대략적인 얼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료, 수사, 동맹과 같은 단어들이다. 새롭기보다는 오래되고 익숙한 단어들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사용했던 국정 운영의 도구들이다.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남북 종전선언, 검찰개혁과 같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적인 정책을 추진하다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윤석열정부는 낡았지만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도구들을 꺼내 들었다. 무리한 정책보다 검증된 도구들이 좋을 때도 있다. 걱정되는 것은 부작용이다. 관료들이 주도하는 민간 주도 성장이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일까, 수사가 본격화되면 민주당과 친문들의 저항이 거셀 텐데 대책은 있을까, 한·미동맹 강화로 나타날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어떻게 관리할까라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아마도 윤석열정부의 성공은 이런 부작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최소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문구가 적힌 나무패를 선물했다. 이제 윤석열정부의 시간이 시작됐고, 책임은 온전히 윤 대통령의 몫이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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