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찾아 광주 찾은 '전쟁 난민' 우크라이나 고려인.. "새로운 삶 살 수 있었으면"

광주=송복규 기자 2022. 4. 23.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다섯 아이와 함께 광주 고려인마을 정착한 최안젤라씨 인터뷰
러시아 침공 피해 우크라이나 고려인 150여명 한국 찾아
한국 국적·영주권 취득 어려워.. 취업·교육 어려움

우크라이나 남동쪽 프로모르스크에서 살던 최안젤라(54)씨는 이달 1일 한국에 입국해 광주광역시에 터를 잡았다. 올해 2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지 19일 만이었다.

최씨는 조상이 한국을 떠난 지 100년 가까이 지나서야 한국에 돌아오게 됐다. 최씨 같은 고려인들은 1930년대 연해주 지역에서 거주하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조부모 세대부터 살던 삶의 터전에서 전쟁을 피해 쫓기듯 ‘조상의 땅’을 찾은 것이다.

최씨는 6년 전 남편을 여의고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며 6남매를 키웠다. 전쟁으로 가족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던 중 텔레그램에서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한국행을 돕는다는 소식을 듣고 출국을 결심했다. 최씨는 맏아들을 제외한 다섯 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500킬로미터(km)가 넘는 길을 달려 루마니아로 건너갔다.

맏아들은 전쟁으로 집을 잃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돕겠다며 고향에 남았다. 맏아들을 두고 오는 것은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최씨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 위치한 ‘고려인마을’로 왔다.

이달 20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최안젤라(54)씨와 자녀들. /송복규 기자

지난 20일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최씨와 자녀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생긴 트라우마들을 털어놨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겪으면서 쉴 새 없이 이어진 전투기 굉음 탓에 소리에 무척이나 예민해졌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에서도 갑자기 큰 소리를 듣게 되면 귀를 막고 공포에 떨기 일쑤라고 했다.

최씨는 “폭격을 직접 당한 지역에 살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남동쪽에서 주로 전쟁이 진행돼 하루종일 전투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며 “전투기에서 나는 굉음이 들릴 때마다 온 가족이 창고에 숨어 벌벌 떨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쟁을 겪으며 두려움에 떨었다”고 말했다.

최씨의 딸 김사라(14)양은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친구들을 걱정했다. 김양은 “한국에 와서도 잘 연락하고 지내던 도네츠크주에 살던 친구가 4일 전부터 연락이 안 된다”며 “폭격당한 것은 아닌지, 친구가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눈물을 보였다. 실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는 러시아의 폭격이 집중되는 지역이다.

최씨의 가족처럼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광주로 온 고려인은 150명이 넘는다. 고려인마을 측에서 비행기 표를 보내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과 스스로 비행기 표를 구해 한국으로 들어온 고려인을 모두 합한 것이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이달 10일에도 우크라이나에서 50여명의 고려인이 한국으로 들어왔고, 빠른 시일 내에 40여명의 고려인이 추가로 입국할 예정”이라면서 “전쟁을 피해 광주로 오는 고려인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씨 가족처럼 ‘전쟁 난민’으로 광주에 온 고려인들은 이제 ‘실향민’이다. 우크라이나 법률상 전쟁으로 인한 피난이더라도 무단으로 출국한 사람은 징역형에 처해진다. 3대에 걸쳐 우크라이나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돌아가지 못할 땅이 돼버렸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려인마을에 위치한 고려인종합지원센터./송복규 기자

최씨 가족은 20일 남짓한 한국 생활에 대체적으로 ‘만족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과 생계를 위한 경제 활동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최씨 가족은 아직 여권조차 발급받지 못해 학교도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국제적십자사에서 지급하는 지원금으로 집 보증금이나 월세를 내고 있지만, 두 달 치에 불과해 이후 생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고려인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이천영 목사는 “고려인들이 우리나라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고려인이 외국 국적자이니 예산을 집행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 법무부에서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을 상대로 체류자격을 우대해줘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자격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법무부는 이달 18일 단기 사증으로 입국한 우크라이나 동포 등에 대한 체류자격을 변경한다고 고려인마을에 안내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동포방문 사증’으로 입국한 18세 이상 고려인은 ‘방문취업 사증’으로, 18세 미만 고려인은 국내 학교 재학이 가능한 ‘재외동포 사증’으로 변경할 수 있다. 다만 부모의 자격 요건이나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 6개월밖에 체류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전쟁 난민’으로 광주로 간 고려인들은 낯선 한국문화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사용하지 않았던 한국어와 고향보다 좁아진 집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최씨는 힘들게 찾아온 한국에서의 삶에 기대를 걸었다. 그는 “신의 보살핌으로 운 좋게 우여곡절 없이 한국에 도착했다. 쉽진 않겠지만, 일자리도 구하고 아이들도 잘 적응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