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 영맨' 같았던 문재인 시대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2022. 3. 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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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더불어민주당 편에 붙어 침 튀기며 발언해온 한 지식인이 며칠전 자기 유튜브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문재인 같은 대통령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도록 빌어야 한다." 그가 보수적인 '반(反) 문재인적' 관점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대선 결과를 한탄하며 문재인과 친문세력이 똘똘 뭉쳐 이재명을 돕지 않은 것을 패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또한 지난 5년간 문재인이 남북관계 등에서 '때'(시기)를 타지 못한 것을 탄식한다. 더 확실하게 자기 색깔을 밀고 나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 논리는 황당하지만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번은 맞는 이치로 이 지식인은 모처럼 울림있는 말을 했다. "다시는 문재인 같은 대통령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도록 빌어야 한다."

누가 내게 물어온다면 이승만 이후 이명박까지 역대 정권에 대해 나름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같다. 박근혜부터는 자신이 없다. 너무 최근이기도 하거니와 '도대체 뭘 했나'하는 의문이 있다. 문재인은 '도대체 잘못하지 않은게 있다면 하나만 얘기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앞서 모든 대통령이 그랬듯 세월과 더불어 우리는 문재인을 조금씩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아직 당면한 현실의 모순인 문재인을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한국 정치사에서 '퇴행'으로 기록될 최초의 대통령이 아닐까한다.

문재인의 원죄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는 1948년 건국을 인정하지 않았고 한국 현대사를 친일파 득세의 역사로 규정했다. 그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성공 문법'을 부정했다. 친미 대신 친중, 용일(用日)대신 반일, 김정은 폭정에 대한 도덕적 분노 대신 '우리민족끼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한국 산업화를 뒷받침한 '값싼 에너지' 원자력을 싫어했고, 한국인이 '아파트'에 갖는 열망을 과소평가했다. 그는 '아껴야 잘산다'는 내핍의 미덕을 깔본 첫 대통령이기도 했다. 전임자들이 가졌던 적자 재정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겐 없었다. 더 잘살기 위해선 생산성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전임자들과 달리 일단 더 잘살게 해주면 소득의 힘으로 경제가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던 첫 대통령이었다.

대한민국은 객관적으로 성공한 나라다. 2차대전후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사례다. 당연히 성공의 비결이 있을 것이다. 그 비결은 모순과 그늘을 내포한 것일 테지만 그럼에도 긍정의 기능이 컸기에 오늘 이만큼 사는 것이다. 잘못된 문법을 바로잡아 성공 문법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보다 몇배 어려운 것이 성공한 문법을 더 성공적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성공 요인은 그대로 두고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아예 새로 문법을 쓰려 했는데 너무 조악해서 봐주기 힘들 정도였다. 완전한 3류였다. 1류는 그런 발상 자체를 할리가 없고 2류는 주저하는 양심과 눈치는 있다. 사리판단이 안되는 3류라야만 그런 퇴행을 거리낌없이 행할수 있다.

나는 문재인 시대를 정치적 '앵그리 영맨' 시대로 표현하고 싶다. 앵그리 영맨은 기성세대의 위선과 모순에 저항·반발했던 2차대전 직후 문학사조를 말하는 것이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희곡제목처럼 문재인 정권은 대한민국의 과거를 돌아보며 성난 표정과 가시돋힌 말들을 쏟아냈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큰 길에서 벗어나려했다. 반항! 그게 그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실은 그것밖에 할 줄 몰랐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앵그리 영맨'들은 나이가 50대를 넘기고 자신들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대학생처럼 관념속의 기성세대를 저주한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 앵그리 영맨들이 지난 5년 대한민국을 몹쓸 나라로 모독했다. 좀 더 갔으면 대한민국은 실제 몹쓸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퇴장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금도 저들은 성난 얼굴을 하고서 다음 정권을 상대로 시비를 걸고 있다. 앵그리 영맨처럼, 토라진 사춘기 소녀처럼. '나 빼고 세상은 모두 거짓이며 왜 세상은 날 몰라주는가'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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