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군가를 바보라고 부를 때..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앵커]
우리 시대의 소설.
매주 이 시간 전하고 있습니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50편의 소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오늘(17일)은, 성석제 작가의 단편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입니다.
소설 주인공 이름이 황만근입니다.
좀 어리숙해서 사람들이 바보라고 부르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해학이 있고, 울림도 있습니다.
유동엽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
주인공 황만근은 마을에 유일한 경운기 주인이었습니다.
경운기 덕에 황만근은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경운기 덕분에 황만근은 사람 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동네 사람이 먼저 옷깃을 잡아당기려는 사람이 되었다."]
땅에서 생명을 일구는 우직한 농사꾼 황만근.
그가 마을에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건 어수룩함 탓이었습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일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런 일에 대한 대가는 없거나, 반값이거나, 제값이면 공치사가 따랐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작가 성석제의 시선은 그런 농부들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성석제/소설가 : "마을에 그런 사람이 꼭 한두 사람은 있었어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현자 같기도 한..."]
저수지에 맞닿은 들녘이 그려내는 고즈넉한 풍경.
그 아늑함 속에도 때론 내가 아닌, 약자에게 비정한 사람살이의 모습이 있습니다.
[성석제/소설가 : "어떤 커뮤니티든 간에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고 그 안에 일어나는 차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걸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고..."]
1990년대, 농사를 지을수록 빚쟁이가 되는 현실을 바꿔보자던 시위.
경운기를 동원하는 시위에 남들처럼 요령 부리지 않고 마을에서 혼자 참여한 황만근.
교통사고를 당한 그가 돌아오지 못하자 이웃들은 그제야 그의 빈자리를 느낍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그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면서 있었고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면서 지금처럼 없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했다."]
세상의 문제를 끌어안고 세상을 떠난, 바보의 이야기는 그를 추모하는 묘비명으로 끝납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영준/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 "아주 음악적이에요. 그런 리듬감을 통해서 우리는 즐겁게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한순간 삶의 실상에 대한 인식의 충격을 가져오는 한 부분을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에 교훈을 남기는 고전소설 같은 구조.
그러나 이야기꾼 성석제의 목적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그 자체에 있었습니다.
[성석제/소설가 : "무엇인가 깨달음을 주려고 해서 수고롭게 하면 안 된다는 게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것,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KBS 뉴스 유동엽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 류재현/그래픽:정지인
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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