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군가를 바보라고 부를 때..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유동엽 2021. 10. 1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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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시대의 소설.

매주 이 시간 전하고 있습니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50편의 소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오늘(17일)은, 성석제 작가의 단편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입니다.

소설 주인공 이름이 황만근입니다.

좀 어리숙해서 사람들이 바보라고 부르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해학이 있고, 울림도 있습니다.

유동엽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

주인공 황만근은 마을에 유일한 경운기 주인이었습니다.

경운기 덕에 황만근은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경운기 덕분에 황만근은 사람 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동네 사람이 먼저 옷깃을 잡아당기려는 사람이 되었다."]

땅에서 생명을 일구는 우직한 농사꾼 황만근.

그가 마을에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건 어수룩함 탓이었습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일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런 일에 대한 대가는 없거나, 반값이거나, 제값이면 공치사가 따랐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작가 성석제의 시선은 그런 농부들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성석제/소설가 : "마을에 그런 사람이 꼭 한두 사람은 있었어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현자 같기도 한..."]

저수지에 맞닿은 들녘이 그려내는 고즈넉한 풍경.

그 아늑함 속에도 때론 내가 아닌, 약자에게 비정한 사람살이의 모습이 있습니다.

[성석제/소설가 : "어떤 커뮤니티든 간에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고 그 안에 일어나는 차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걸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고..."]

1990년대, 농사를 지을수록 빚쟁이가 되는 현실을 바꿔보자던 시위.

경운기를 동원하는 시위에 남들처럼 요령 부리지 않고 마을에서 혼자 참여한 황만근.

교통사고를 당한 그가 돌아오지 못하자 이웃들은 그제야 그의 빈자리를 느낍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그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면서 있었고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면서 지금처럼 없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했다."]

세상의 문제를 끌어안고 세상을 떠난, 바보의 이야기는 그를 추모하는 묘비명으로 끝납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영준/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 "아주 음악적이에요. 그런 리듬감을 통해서 우리는 즐겁게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한순간 삶의 실상에 대한 인식의 충격을 가져오는 한 부분을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에 교훈을 남기는 고전소설 같은 구조.

그러나 이야기꾼 성석제의 목적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그 자체에 있었습니다.

[성석제/소설가 : "무엇인가 깨달음을 주려고 해서 수고롭게 하면 안 된다는 게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것,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KBS 뉴스 유동엽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 류재현/그래픽:정지인

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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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우리 시대의 소설> 스물세 번째 작품은 성석제 작가의 단편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입니다. 한 시골마을에서 유일하게 경운기를 가진 주인공 황만근은 우직한 농사꾼이었습니다. 자기 이익에는 아랑곳않고 마을 사람들이 필요한 일을 도우며 살아가죠. 마을 사람들은 그런 황만근에게 차츰 신뢰를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날 농민 시위에 경운기를 끌고 나간 황만근이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오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은 어느새 그의 빈 자리를 깨닫게 됩니다. 능수능란한 이야기꾼 성석제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늘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줍니다. 성석제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것,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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