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10년 뒤 신문을 미리 본다면

양민철 2021. 9. 1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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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철 이슈&탐사2팀 기자


지금 손에 10년 뒤 신문 한 부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면에는 2031년 대한민국 대통령이 누군지 나와 있으리라. 경제면을 펼치면 10년 뒤 가장 핫한 산업과 기업이 무엇인지, 지금 잘나가는 회사가 어떻게 됐는지 한눈에 보일 것이다. 국제면엔 가장 시끄럽고 난리가 난 나라들이, 사회면에는 10년 뒤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검·경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기록돼 있을 터다. 이런 정보들을 알고 있다면 큰돈을 벌거나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도 가능하다. 앞날을 미리 안다는 것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

사실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통계청·한국연금학회 등이 내놓은 전망을 보자. 올해 태어난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면 1억원 넘는 나랏빚을 짊어지게 된다. 2030년 대한민국은 50대 이상 인구(52.6%)가 절반을 초과한다. 10대(8.7%)는 전체 인구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연 수입 200억원 대치동 수학 강사마저 “7~8년 내 수능이 폐지될 것 같다. 그전에 (사교육 시장을) 뜰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은퇴 후 노후 대책인 국민연금은 2057년 바닥을 드러낸다고 한다. 갓 취업한 20, 30대는 30년 넘게 연금만 내고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

이런 예측은 과연 얼마나 들어맞을까. 과거 사례로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2009년 통계청은 ‘향후 10년간 사회 변화 요인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 총인구 감소 시점을 2018년으로 예상했다. 현실이 된 시기는 1년 늦은 2019년이었다.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21.0%로 예상했는데, 실제 수치는 29.3%였다. 예측보다 더 빠르게 나타난 것이다. 2010년 정부가 꾸린 연구·개발(R&D) 기술전략단은 ‘5대 미래 선도 기술’로 전기차·시스템반도체·에너지 그리드(전기+열에너지)·신재생에너지·바이오 신약 분야를 꼽았었다. 현재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주도하는 업종과 상당수 일치한다. 현재의 답안지는 이미 10여년 전 나와 있던 셈이다.

복잡한 숫자나 통계를 나열하지 않아도 2030세대는 자신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학급당 학생 수와 현역병 입영자 수는 본인 시절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대기업 공채는 사라지고, 기술 발전으로 단순 일자리마저 없어지고 있다. 웬만한 수도권 대학은 물론 명문대까지 존폐 기로에 섰다. 몇 년 새 치솟은 집값은 근로 의욕마저 꺾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연 100만원 기본소득이나 무이자 월세 대출 같은 달콤한 말만 쏟아낸다. 청년층에겐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것)이나 다름없다. 증세나 국채로 당겨쓴 돈이라면 결국 살면서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뻔히 보이는 일이다. 인구 구조가 역피라미드인 일본은 청년층이 소득·소비세와 노령연금, 건강보험료 등을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부담한다. 고령층이 많아 팩스·도장·종이 문화가 여전하고 디지털 전환도 늦다. 하지만 일본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다.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 50대(1612만명) 투표율은 55.43%, 20대(1257만명) 투표율은 30.96%였다. 인구도 적은데 투표마저 하지 않으니 정치인 입장에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지금이야 대선이란 큰 판을 앞두고 선심성 청년 정책이 쏟아지지만, 투표가 끝나면 한국 정치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씻을 것이다. 2025년이면 한국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유권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청년층보다 중장년·고령층을 겨냥한 복지·수당 정책을 쏟아내는 게 훨씬 쉽고 선거에도 유리하다. 이대로라면 지금 나오는 암울한 전망들은 ‘정해진 미래’로 굳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여야 대선 후보들은 팔짱만 낀 채 나 몰라라 한다. 10년 뒤 신문에 실릴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걸까.

양민철 이슈&탐사2팀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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