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와 여수음악학교 학생들 "우리가 꿈꾸는 판타지 기대하세요"
"지금이 대낮이나 저녁이 아니라 새벽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조용하던 마을에서는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해요. 이런 분위기로 한번 가볼까요."
9일 오전 전남 여수시 시전동 예울마루 공연장 지하 연습실에서 녹색 재킷을 입은 지휘자의 비팅(박자를 젓는 손동작)과 동시에 현악기군의 나지막한 저음 연주가 시작됐다. 곧 이어 영롱한 타악기 종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모음곡 중 서주가 피어났다. 딱딱거리는 캐스터네츠의 박자감에 맞춰 정열적인 춤곡이 시작됐을 때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손짓도 빨라졌다. "이건 프랑스 음악입니다. '구텐탁!(독일어 인사)'이 아니라 '봉주르~(불어 인사)' 같은 느낌이죠. 무뚝뚝하면 안 돼요."
이날 연습실 포디엄에 있었던 지휘자는 금난새 '여수음악제' 음악감독이었다. 여느 오케스트라 연습과 다른 점이라면 단원들의 면면이 앳되다는 것. 초등생과 중학생, 고등학생들로 이뤄졌다. 연주 음악은 러시아 작곡가 셰드린이 편곡한 현과 타악기를 위한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이 열띤 연습은 10일 저녁 이 공연장에서 열리는 '금난새와 여수 꿈나무 드림 콘서트'의 최종 리허설이었다. '드림 콘서트'는 올해 5회를 맞은 'KBS교향악단과 함께하는 여수음악제'의 핵심 공연이다. 여수시와 여수음악제 추진위원회, KBS교향악단은 지방의 문화 콘텐츠 발굴과 유소년 음악교육을 위해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금 지휘자는 올해 음악제의 음악감독으로서 행사를 진두지휘하는 한편 학생들을 직접 만나가며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KBS교향악단 단원들도 선생님으로 나서 악기를 지도한다. 수업료가 없는 재능기부 성격이 강하다.
여수음악회 음악학교 출신 학생 20명이 KBS단원 66명과 함께 1,000여 석 규모 대공연장 무대에 데뷔한다. 서거 100주년을 맞은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와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등도 연주할 계획이다. 학예회가 아닌 정식 연주회인 만큼 지휘자도, 연습에 임하는 학생들도 진지했다. 금 감독은 박자와 템포, 셈여림 등 음악의 기본은 물론, 현악기의 세세한 활 테크닉까지 점검하며 소리를 개선해 나갔다. 예컨대 "이 대목을 동물로 비유하면 다람쥐와 호랑이 중 무엇에 더 가까운 것 같나요?" 하고 물은 뒤 "호랑이라고 답했으면 첫 음부터 활을 많이 써야겠죠" 하고 비유하며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악기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안정감을 찾아가자 금 감독은 연신 "행복하다"며 기쁨을 표현했다. 단원들도 박수를 쳐가며 서로를 격려했다.
지난 7월부터 8차례에 걸쳐 수업을 받은 음악학교 학생들은 일취월장했다. 교과서나 TV에서나 봤던 거장 지휘자를 눈앞에서 만나는 것도 소중한 추억이다. 바이올린 파트에 있는 백희연(18)양은 "학생이 연주하기에 양이 방대한 곡들인데, 지휘자님이 긴장을 풀어주려고 애써주셔서 즐겁게 연습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타악기를 담당하는 공정현(17)군은 "평소에는 인자한 지휘자님이 악기를 제대로 갖추고 연습에 들어가니 눈빛이 바뀌면서 카리스마가 나타났는데 집중이 안 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음악교육은 한국의 클래식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두각을 보이는 연주자를 만들고, 유수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배출하는 초석이 된다. 연습에 참여한 김가희(11)양은 "음악을 할 때만큼은 내 자신이 무엇이라도 된 것 같아 뿌듯하다"면서 "첼로가 너무 재미있어서 전공으로 삼고,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금 감독은 서울예고 교장을 역임하는 등 오랜 시간 음악 교육에 헌신해 왔다. 그는 "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죄를 지은 듯 주눅이 든 상태로 자신이 외운 악보를 틀리지 않게 연주하는 데만 급급하는 폐쇄적인 관행은 음악을 싫어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음악이 어떤 대사를 하고, 판타지(환상)를 꿈꾸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수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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