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첫 확진 섬마을 노부부, 잠깐 서울 왔다가 '영원한 이별'
[경향신문]
노부부의 집은 전남 완도군 완도여객선터미널에서 뱃길로 30여분을 간 뒤 다시 농어촌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섬 속 작은 마을이다. 이들에게 코로나19는 ‘TV 뉴스 속 사건’일 뿐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병원 진료를 위해 잠깐 서울에 왔다가 식사모임에서 감염이 돼 완도의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됐다. 기저질환이 있던 70대 부인은 결국 숨졌다. 코로나19는 평생을 함께했던 부부를 영영 갈라놨다.
코로나19는 사회 곳곳에서 희생을 강요했다. 병원이나 요양시설 내 집단감염으로 삶을 마쳐야 했던 이들이 많았지만, 종교시설·집회·유흥업소·김장모임 등에서 비롯된 ‘n차 감염’으로 자신도 모르게 감염됐다가 사망한 사례도 쏟아졌다. 전수조사의 사각지대에서, 최일선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병상이 없어 대기하다가, 누군가 돌봐줄 가족도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한 환자, 모두 우리의 소중한 이웃이었다.
■ 첫 사망자는 무연고자
공장 전수조사 때 비번이었던
파견 노동자, 사망 후 양성 판정
한국의 코로나19 첫 사망자는 1차 대유행 때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경북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다가 지난해 2월 숨진 A씨(64)다. 그는 숨지기 직전 고열 등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보였다. 방역당국이 A씨가 숨진 후 검사를 한 결과 양성 판정이 내려졌다.
A씨는 20여년 전부터 대남병원에서 생활해왔으며, 조현병과 만성폐질환 등을 앓고 있었다. 청도군 관계자는 “대남병원에서 숨진 환자 대부분이 무연고자인 데다 입원 시기도 불명확하다”면서 “A씨 역시 유족을 찾지 못해 청도군청 직원들이 장례를 치러줬다”고 말했다. 대남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숨진 사람은 모두 9명으로, 이 중 정신병동에서만 7명이 나왔다. 이들 대다수는 무연고자로 처리돼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환자를 돌보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세상을 떠난 내과 전문의 허영구씨(61). 국내 의료진 가운데 첫 사망자다. 허씨는 지난해 4월3일 오전 경북대병원 음압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방역당국은 허씨가 지난해 2월26일 외래진료 중 확진자와 접촉하며 잠복기를 거쳐 감염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사망 2주 전쯤인 지난해 3월18일 발열과 근육통 등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호소하며 경북대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아 진단검사를 받았다.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등을 앓았던 허씨는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와 에크모(ECMO·심장보조장치)를 착용하고 신장투석 치료 등을 받았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동료들은 허씨를 ‘묵묵히 환자를 돌보던 말수 적은 의사’로 기억했다. 고인의 경북대 의대 1년 후배인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은 “평소 병원과 집만 오갈 정도로 성실했고,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상황에서도 환자를 열심히 돌보던 희생정신이 남달랐던 선배였다”며 “생전에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으면서 말수가 적고 잘 웃는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경기 군포에서는 파견 나간 직장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집에서 대기하던 60대 노동자 B씨가 숨졌다. 그는 80여명이 집단감염된 군포시 한 피혁공장의 하청업체 파견 노동자였다. 해당 공장에서는 지난달 29일 첫 확진자가 나왔고, 군포보건소는 당일 밀접 접촉자 31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여 2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파악했다. 보건소는 다음날 공장을 방문해 직원과 파견 노동자 등 455명을 전수조사했으나, B씨는 출근하지 않아 검사를 받지 못했다. 그는 사망 후에 양성 판정을 받았다.
■ 병상 대기 중 희생 속출
첫 사망자 나온 대남병원
9명 중 대다수 무연고로 쓸쓸히 떠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가족 간 김장모임에도 파고들어 전국 각지에서 불특정 다수를 감염시키고 목숨까지 앗아갔다. 충북 제천에서는 김장모임에 있었던 지인과 함께 밥을 먹은 아내에게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60대가 지난해 11월 확진 판정을 받은 후 보름 만에 숨졌다. 김장모임 관련 ‘n차 감염’으로, 이 지역 첫 번째 사망자로 기록됐다.
경기 부천에 있는 효플러스요양병원에서는 39명이 숨졌다. 국내 코로나19 발생 이후 단일 장소 사망자로는 가장 많다. 특히 이 병원에서는 전담 병상 이송을 기다리다 숨진 환자가 27명에 달했다. 서울에서도 지난달 확진 판정을 받은 동대문구 거주 60대 남성이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사흘간 대기하는 사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
이처럼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대구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병상 부족으로 집에서 대기하다 숨지는 사례가 많았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2월 신천지 대구교회 교인들의 무더기 감염 이후 사망자 수가 198명(5일 0시, 대구시 기준)에 이른다. 대구시의사회 한 관계자는 “(대구에서) 지난해 2월 말과 3월 초에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초기 사망자 70여명 중 20%가량은 입원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백경열·강현석·경태영·이삭·박준철·박태우·류인하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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