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쇼 가수? 악플조차 행복했던 내 이름은 김중연!

최보윤 기자 2020. 4. 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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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트롯' 데치매치서 물쇼로 눈도장
20위에 든 뒤 앨범 '수호천사' 발표
망돌? 이젠 열정트롯돌이라 불러주세요

김중연? 이름만 들어선 금방 누군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경연 중 ‘물쇼’를 이야기하면 아마 “아, 그 사람!”이라 할 것이다. 혹자는 ‘이름모를 소녀’라는 곡명까지 기억할 수도 있다. 아이돌부로 출연했던 김중연(28)은 신동부 출신 양지원(26)과의 데스매치를 통해 대중에 눈도장을 찍었다. “혹시, 했는데 길거리에선 아무도 못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하하! 제가 방송에서 보이는 것 하고 평소 느낌이 다르다고들 하세요. 그러다가도 ‘물쇼’ 얘기만 나오면 ‘샤워 쇼?’ ‘생수 쇼?’ 하며 눈을 번쩍 뜨시죠.”

김중연/오종찬 기자

열 다섯 살때부터 밴드 음악을 했다는 그는 이미 5년 전 아이돌그룹 A6P로 데뷔했다. 당시 데뷔 동기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몬스타 엑스’ ‘세븐틴’ ‘엔플라잉’, 그리고 ‘미스터트롯’ 동기생 황윤성이 있는 ‘로미오’다. “2년 가까이 열심히 뛰었어도 방송 무대에 6번 정도 나왔나, 할 정도니 무대에 섰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하죠.” 그랬던 그는 ‘미스터트롯’에서 장민호가 이끄는 ‘트롯신사단’ 멤버로 20위까지 올랐고, 얼마 전엔 ‘수호천사’라는 앨범을 내고 트로트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이를 기념해 그의 팬클럽 ‘김중연구소’ 회원들이 서울 삼성역 지하철 광고판으로 응원하기도 했다. 오는 5월 23일엔 팬미팅을 겸한 라이브 쇼도 열 예정이다. 최근 만난 김중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케줄 중 하나가 인터뷰다.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입이 근질근질하네요.”

―‘미스터트롯’ 출연이 김중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전의 김중연은 앞길이 막막하고 우울했던, 의기소침한 저였고. 미스터트롯 후에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너무 활기찬 중연이가 됐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많아졌다. 연습생 시절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장윤정 김준수 선배님들같이 대단한 마스터분들에 처음으로 인정받았으니까.”

김중연/오종찬 기자

―소속사 대표 권유를 받고도 과연 출연 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트로트가 일종의 벽 같았다. 노래 면에서도, 심리적으로도. 당시 일본 활동도 준비하면서 멤버도 구하던 중이었다. 만약 예심에 붙어서 일원이 됐을 때, 정말 절실한 트로트 가수 분들의 자리를 빼앗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감이 아니라 혹시나 하며 로또를 사는 심리 같은 것. 돌이켜보니 출연은 제 인생에 정말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올하트’(남행열차)로 시작했지만 트로트 창법이 아니라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악플이 정말 많이 달렸다. 그 악플조차 너무 좋았다. 실시간 채팅을 보는 데, ‘이게 무슨 트로트냐’ ‘너무 못한다’ ‘조작 아닌가. 뛰어다니기만 하고 얘 뭐임?’이란 글이 계속 올랐다. 특히 ‘얘가 왜 올하트? 잉????’ 이렇게 실시간 채팅에 물음표가 잔뜩 붙는데 그 부분이 너무 재밌었다. 이런 게 관심인가 보다 하고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이전엔 알아봐 주지도, 이런 글조차도 없었으니 말이다. 신기한 건, 팬분들이 생기면서 악플이 없어졌다는 거다. 방송 무대 영상 빼놓지 않고 댓글 다 찾아보는데 그 많은 악플이 이젠 안 달리더라. 팬분들이 지켜주고 있는가 보다.”

―생수 퍼포먼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상대 양지원씨가 워낙 보컬로 뛰어난 분이라 노래로 맞서기엔 트로트 경연 특성상 무조건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이름모를 소녀’ 곡에 나만의 록(rock)창법을 넣어 록트로트 장르를 선보이고자 했는데 한참 부족해 보였다. 여러 퍼포먼스를 구상했는데도 무언가 허전했다. 담당 작가님께 고민 상담을 했더니, ‘물이라도 한 번 뿌리던가’라셨다. 처진 어깨로 자리에 일어섰다, 금세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무대를 그려보니 괜찮을 것도 같았다. 그 말씀이 나의 절실함을 더욱 끓어오르게 한 것 같았다. 작가님께 너무 감사하다.”

김중연/오종찬 기자

―갈망하는 아이돌이 됐지만, 원하는 방송 무대에 거의 서지 못했다.

“데뷔하고 그해 말인 2015년과 이듬해 초가 인생 최악이었다. 이상적인 꿈이 굉장히 컸던 시기였으니까. 톱스타라는 큰 꿈을 안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뚜껑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허탈했다. 중국에서 드라마 출연 제의도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무산되더라. 되는 일이 없었다. 연습생 때가 훨씬 좋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는 부푼 꿈을 안고 달려가자, 하고 스스로를 단도리하며 의욕도 충만했으니. 데뷔만 하면 끝인 줄 알았다. 어린 아이돌분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 적지 않을 것이다. 눈앞은 암흑이었다. 매일 우울하고 의욕 없고, 연습실 가면 잠만 잤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극복을 못 했다. 그 상태로 군대에 갔다. 바닥을 찍고 회복을 했어야 했지만, 그랬다면 더 열심히 연습해 다른 회사를 찾아봤을 수도 있는데 내 입에서 나온 건 ‘못하겠습니다’였다. 주위에서 아직 나이도 있는데, 더 해보라고 말렸지만 군대부터 다녀오고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어찌저찌 먹고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아이돌 하면서도 일이 없어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적 있었다.”

―미스터트롯에서 ‘망돌(망한 아이돌)’이란 말이 싫었을 수도 있겠다. 안 좋은 기억을 헤집어 놓는 것일 테니.

“대중들은 우리가 망한 것조차 모르셨을 거다. 알려진 이들이어야 망했다가 다시 나왔네, 하겠지만 존재 자체를 모르는데 망하고 말고가 사람들에겐 무슨 관심사겠는가. ‘망돌’은 우리 내부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다. 그 단어가 외려 하나로 뭉치게 하고 다시 일으키는 말이 됐다. 누가 두 번 망하고 싶겠는가. (최)정훈이 형은 아마 데뷔만 5번째일 것이다. 정말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숨이 덜컥 거릴 때까지 연습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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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연/오종찬 기자

―‘망돌’이 아닌 ‘절실돌’이었겠다.

“어쩌면 ‘눈치돌’이 아니었을까. ‘망돌’은 우리의 결속력을 키우긴 했지만, 넉살 좋은 도진이형 빼고 아이돌부 대부분이 ‘망돌’ 꼬리표에 이미 기가 많이 죽어 있었던 것 같다. 현역팀이나 신동부 같이 트로트를 주름잡고 있는 이들이 서로 잘 알고 친한 걸 보면 뭔가 우리가 끼면 안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로 인해 귀찮지 않을까, 불편해하지 않을까, 종일 눈치만 봤다. ‘못 나가는’ 아이돌때부터 이런 생활을 해서 습관이 됐나 보다. 프로그램 막바지가 돼서야 대화도 좀 나누고, ‘트롯신사단’ 하면서 민호 형한테 조언도 정말 많이 들었다. 이젠 형들한테 먼저 연락도 드린다. (양)지원씨와도 프로그램 끝나고 온라인으로 친해졌다.”

―지금의 김중연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열정 트롯돌이다. 트로트 햇병아리로 입문하는 단계이고, 열정 하나로 패기 있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열정 트롯돌이라는 수식어가 제대로 완성될 수 있도록, 남들보다 유난히 많은 땀을 더 많이 흘려보도록 하겠다. 장윤정 선배님처럼 수록곡 하나하나 대중이 알아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

김중연/오종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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